2월,
초등학교가 벌써 개학한걸까?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운동을 하는건지
목이 아파라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난 웃으며 혼자 말했다.
"아침부터 저래 소리 지르니 지치겠다."
옆에 있던 지원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애들이지 뭐."
다른 때보다 복지관 차가 늦게온다 싶을때, 지원사 쌤이 물어보신다.
"왜 차가 안오지? 오늘 합창 가는 것 맞죠?"
"네..."
그때였다.
차가 도착했다.
오늘은 새로운 분도 오신 건지,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본관이 아닌 별관에서 한달동안 합창 수업을 하는가 보다.
봄밤, 봉선화, 목장의 노래
그동안 배운걸 차례로 부르고 있었다.
오늘 처음 배우는 곡은
가곡중 언덕에서 였는데
모두 가사가 너무 이쁘다.
개인적으로 '목장의 노래'가 밝고 경쾌해 제일 좋다.
합창이 끝나고 난 화장실에 가고싶어
지원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자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잠깐 장보자고 하셨다.
결국 복지관과 가까운 마트에서 반찬을 샀다.
고무장갑도 사고,
쌤이 필요한 것도 개인적으로 사셨다.
그걸 터덜터덜 들고와서 복지관 차를 타고 집에 왔다.
그제서야 난 급했던 볼일을 볼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데
왜 그런지 선생님은 짜증을 낸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먼저번에 장 보았던 도라지 반찬을
하나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가 좋지 못해 못먹었다는 사실을 말하자
쌤은 음식 쓰레기로 바로 버리시는듯 싶었다.
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한마디 하신다.
"우리집도 반찬 사먹어요.
아니 요즘 사람들 다 사먹어요.
일하니까 반찬할세는 없으니까."
그러게 난 아무말 안했는데... ....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냥 웃었다.
먼저 지원사 쌤도, 지금 지원사 쌤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다보니
쉽게 오해가 불거지는 기분이 왠지 좀 많이 아쉽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다시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안되네...
명절 후유증인 걸까?
다음날 아침,
지원사 선생님과과 함께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다른 때는 늘 봄내콜로 같이 교회를 다니던 길을
오늘은 걸어가자고 하셨다.
날씨도 춥지 않고,
오랜만에 운동도 할 겸
괜찮을거야 생각했다.
그러나
교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망가진 문고리를 사오면서
다 와가는데 그만 깊히 파인길을 못보고 난 넘어졌다.
발목을 삔 것 같고 너무 아팠지만
선생님은 괜찮다고, 흔적이 없고 붓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결국 선생님은 점심을 먹으라고 했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화장실을 기어서 가자 심각성을 느꼈는지
병원 가야겠다고 하셨다.
근데 곧 퇴근하셔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지금은 점심 시간이니
주은이랑 꼭 다녀오라 하셨다.
나는 정신이 없어 대답조차 하질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히 카톡을 보냈다.
주은이는 바로 전화를 했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선생님도 병원 데려다 줄테니 주은이랑 다녀오라고 하셨다.
병원도 너무 멀리 다니지 말고
집 근처 병원 거기도 괜찮다며
정형외과를 향하고,
그 병원 주차장에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돌아가야 해서
그냥 계단으로 낑낑대며 올라갔다.
드디어 주은이가 병원에 왔다.
선생님은 바로 퇴근하셨다.
대기 환자가 10명, 이정도면 1시간은 족히 넋놓고 기다려야 될거다.
그래서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인대가 많이 손상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리치료 받는 그 사이에
주은이는 휠체어를 보건소에서 빌려왔고,
그 다음 부터는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었다.
침도 맞고 보호대를 해야했다.
점심은 못먹었는데 배고픔보다
주은이랑 같이 있어서 안도감이 느껴졌고,
또 금방 편하게 치료를 마쳤다.
우린 지하상가에서 대추차를 마셨고
저녁은 오므라이스를 먹고 집에 왔다.
아직 아픈건 똑같지만,
왠지 조심조심 걸으면
혼자서도 걸을 수 있을것 같아 그냥 행복했다.
다음엔 발목 보호대를 늘 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무 어이없다.
작년 여름에 크게 다치고 다시 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