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닫아라

일기예보 보다 정확했던 엄마

by 미뚜리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친정 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왜냐면 엄마는 일기예보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몸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나는

처음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국민학교 때도 그랬다.

해는 반짝이는데 엄마는 갑자기

장독대 가서 뚜껑을 닫으라고 하셨다.

정말 뚜껑을 닫고 나니 소나기가 오지 않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 학교 등굣길에 엄마는

우산을 들고 가라며 꼭 챙겨주셨다.

그 바람에 가져갔지만

날씨는 맑았다.

그런데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하교할 때쯤,

"맑은 날에 날벼락"

이런 뜻에서 하는 말이던가?

해가 나는데 뜬금없이 비가 오는 것이 아닌가

엄마 덕에 우산은 챙겼지만

혼자 덩그러니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에이 몰라 나도 비 맞으면서 애들이랑 같이 가지 뭐."


그렇게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비를 맞으며 각자의 집을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엄마는

우산을 가지고 갔으면서

왜 비를 쫄딱 맞은 생쥐 꼴이냐고 하셨다.

그래서 난


"친구들은 우산을 하나도 들고 오지 않았어.

근데 어떻게 나 혼자 살겠다고

우산 쓰고 집에 와, 의리가 있지."


그러자 엄마는 꿀밤을 때리며


"이 바보야.

그렇다고 비를 다 맞고 오니?

그럼 감기 걸리잖아"

"에이 난 몰라"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윗목으로 쏙 들어갔다.

바로 나만의 작은 공간이다.

나는 좋아하는 최성수 사진을

마음껏 벽에 붙이고

짝사랑하는 행복감은 너무도 컸었다.

그날 오후쯤

서울 인삼밭 사장님들이 우르르 오셨다.

우리 집에서 며칠을 보내시려나 보다.

그분들은 인삼밭 사장님들,

우리 엄마 아빠는 관리자였다.

늘 내 학교 등굣길을

차로 태워다 주셨고

그런 것이 감사했다.

그러나 반 친구들은 그걸 보고

내가 부잣집 딸인 줄 착각하여

얼마나 부잣집인지 궁금하다고 자꾸만 물었다.

"소가 몇 마리냐"

"양이 몇 마리냐"

질문을 하곤 했다.


"아니야,

그 아저씨는 우리 집에

잠시 머물고 계시는 사장님이야.

나를 데려다주는 기사님이라고"

"그러니까 부자 맞네.

너 용돈 얼마나 받아?"

"잘 몰라, 가끔 1만 원짜리를 받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나의 어릴 적엔

간식이 그리 흔하진 않았다.

사 먹는 간식이라면

10원짜리 쫀득이가 최고였고,

또 짱구가 최고였고,

풍선껌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동네 언니들과 친구들과 모여서 고무줄놀이하고.

깨진 그릇이나 병뚜껑으로

소꿉놀이도 하고,

작고 동그란 돌을 주어다가

공기놀이도 하고.

그때는 정말 하루 종일 해가 지도록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아도

지루하지 않았던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어쩜 엄마의 그 길을

50대인 나도 천천히 걸음마하며

딛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