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면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차에 태우고 온다.
그러다 보니 아침저녁으로는 차가 많이 붐빈다.
그러게 우리 자랄 때와는 너무나 많이 다르지
"민지야? 학교 가자"
이런 이야기도 없이
아이들은 휴대폰에 끌려다닌다.
학원 갈 시간 집에 가는 시간 과외 시간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운동회를 하는가 보다.
그 모습을 보니
촌스러운 나의 시절도 기억난다.
책상에 늘 삼팔선을 그어 놓고
물건이 넘어가면 무조건 뺏는 코흘리개
내 무식한 짝꿍 때문에
뿔딱지 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운동회 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가족들과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을 잔치
아직도 기억난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100m 달리기를 했는데
그만 내가 꼴찌가 되어 버렸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그러자 엄마는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 비록 꼴찌는 했지만
포기는 안 했잖아.
그니까 된 거야."
그런 덕에 조금은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 속상했었다.
그러자 엄마들끼리 달리기를 하는데
와- 우리 엄마가 1등을 했다.
그런 바람에 상품도 받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기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점심때가 되어 온 가족이 다 모여
김밥도 먹고,
삶은 밤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그렇게 서로서로 나누어 먹었다.
쉬는 시간 틈에 솜사탕을 사 먹고 있을 때
오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 굴리기도 했었고
줄다리기도 했었다.
모두가 끝났을 때는
상으로 공책을 나누어 주셨다.
5학년 까지는 매번 참여하지 못해
빈손으로 와야 했던 나지만
그래도 6학년 때에는
마지막 운동회를 뛰어보아서
너무나 좋았다.
매번 나는 운동회만 되면
한쪽 구석에 교장선생님과
어색하게 앉아 있어
구경만 해야만 했었다.
그게 정말 싫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냥 쉬게 하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그런 마음을 알고 계셨던 건가,
교장 선생님은 학용품 세트를
내게 안겨 주시며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셨다.
비가 내린다.
장마철이 되면 개울가에
돌다리가 물이 넘쳐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었다.
그때마다 동네 어른분들은 비상이 걸렸고
군인 아저씨들도 비상이 걸렸었다.
일일히 업어서 건너 주기도 하고,
떠내려가는 내 신발을 직접 찾아준
한 군인 아저씨도 기억난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늘 비가 많이 오면
어른들은 비상 걸렸다.
그래도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심심하진 않았다.
이유는 흑백 TV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그렇게 발 딛을 틈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앉아
같이 늘 TV를 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