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의 설렘

by 미뚜리

아빠는 오랜만에

4형제 자식들과 둘러 앉아

옛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옛날에는 집터에다가도

제사를 지내곤 했어."


그 이야기에

젊었을 때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엄마는


"달맞이하러 가자 "


쥐불놀이도 하지만

엄마는 논에서 짚을

한곳으로 모아 불을 붙이고

다른 짚을 가져다가 불을 붙이고

동굴게 돌리며

한사람 한 사람의

가족 건강을 소원했다.

그때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앞집 계집애처럼

나도 종이 인형을 갖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중학교 갈 때는

새 신발과 큰 가방을 사주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

나도 오빠들처럼 버스 타고

학교 다니겠다는 설렘이 들었다.


그러던 개학날

새 신발과 새 가방을 메고

학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이 질퍽질퍽

나의 흰 운동화는

엉망이 되어 속상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여자 중학교,

한 학년에 6반까지,

우리 반 아이들은 53명이었다.

처음으로 배워보는 영어 과목이

내겐 설렘을 줬다.

우리나라 말이 아닌

새로운 언어가 신기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진 국어시간.

선생님은 책에 나온 시를

모두 외우게 하셨다.

나는 과목 중

국어 점수가 제일 좋았고

시를 외우는 게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중학교 가니 모두 같은 반.

그러고 보니 앞집 계집애도

우리 반인가 보다.

잘 됐네

같이 버스 타고

집에 가면 되니까

수업이 끝나고 버스 차표를 들고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버스가 올 때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모이는 바람에

나는 어디 가는 버스라는 걸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간다.

버스 안내양은 내 차표를 받고

내가 내리자 차를 두들기며

안내양 언니는 그런다.


"오라이"


집에 가보니

흑백 티브이는 사라지고

칼라 티브이가 있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하니까

아빠는 티브이를 보시며


"올림픽은 칼라로 봐야지"


오늘 저녁 메뉴는 범벅이다.

먹을 때 입속에선 참 행복한데

어릴 때 흔들리는 이빨이

범벅 먹고 확 빠져버릴 때도 있었다.

나는 오빠들처럼

내 방을 갖고 싶었다.

친구들은 자신의 방이 있고

그 방에서 일일 공부를 한다나?

그게 너무 부러웠다.

앞집 계집애가

일일 공부 학습지를 하다 보니

늘 1등 자리를 놓지 않아

기분 나쁘다.

나도 내방이 있으면 좋겠고

일일 공부하고 싶다.

혼자 앉아 궁시렁거린다.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는가 보다

아빠를 포함해 4 명의 남자는

혼을 빼고 티브이를 본다.

그러자 엄마는 일일 연속극

나올 시간이랑 겹쳤기 때문에

서운해 했다.

하여튼 우리 집 남자들은 문제라며

삐진 우리 엄마

그런 난 마루에 나와앉아

보이지 않는 별을 향해

눈을 높이 두며 멍 때린다.

오늘 하루 속을 기억하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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