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일

by 미뚜리

새벽이 되면

엄마도 아빠도 일어나

부엌으로 가신다.

왼쪽 솥은 외양간에 기르는

소를 위해 여물을 끓이고,

오른쪽에 두 솥은

세수 물을 끓이거나

밥을 짓거나 했다.

장작 패 놓은 나무들을 아궁이에 넣고

신문을 구겨 성냥으로

불을 붙여 뗐다.

그 덕에 방은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도 난다.

아침밥을 먹고 오빠들과 학교를

갔다.


오늘은 신체검사하는 날

친구들은 일렬로 자기 번호대로 서고

우린 몸무게, 가슴둘레, 청력, 키를 쟀다.

나는 몸무게도 미달,

청력도 시력도 좋지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지만

원래 세상은 그런 거거니

그것이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진 않은 듯 싶다.


점심시간, 도시락을 열고

밥을 먹으려는데

맞아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

엄마는 반찬을 다른 때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었고,

밥 위에 계란 후라이도 있었다.

그리고 작은 편지엔

엄마의 엉성한 글씨체가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고...

그래서 아침에 용돈을

삼천원 주신 거였구나!

후식은 50원짜리 핫도그를 사 먹고

나머지 돈은 저금할 거다.

돼지 저금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싶으니까.


학교 마치고 집에 오니

친할머니가 오셨다.

마당에 고추를 따고 계셨다.

그래서 나도 도와드리려고

밭에 들어갔고

빨간 고추만 땄는데

일이 벌어졌다.

왜냐면 갑자기 눈이 가려워

그대로 눈을 비볐다.

얼마나 아프던지.

엄마가 인삼밭에서 일하시고

돌아오는 그 시간까지

나는 울어야 했다.

너무 아파서 물에 씻고 씻었는데

그래도 너무 아팠다.


결국, 울다가 잠이 들었고

내가 잠에서 깰 땐 밤이었다.

할머니는 그새 가셨나 보다.

간식을 잔뜩 사놓고 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초코파이, 산도.

저녁 먹기 전에

하나 꺼내 먹으려는데

엄마한테 들켰다.

결국 혼났다.


"안 그래도 입이 짧은 애가

과자부터 먹으면 어떡해"


난 몰래 먹는다고 먹는데

엄마는 눈도 밝다.

엄마를 째려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오늘도 우리 집은

4남자가 티브이 앞에 앉자,

응원하느라 난리가 아니다.

이번에도 일일 연속극은 물 건너 갔다.

재방송이나 봐야지.

근데 우리나라 여자 양궁

금메달인가 보다.

그러게, 우리나라 멋지네.

그때부터 관심이 갔다.

결국 우리나라는 16강

작은 나라지만 멋짐을 다시 느낀다.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후라시를 들고 나섰다.

그때였다

그런 나를 보고 큰오빠는 말했다.


"화장실 가면 있잖아,

하얀 손 불쑥 나와.

그리고 말하지.

흰색 줄까? 빨간색 줄까?"


순간 너무 무서웠다.

화장실은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때 엄마는 말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놀리면 못써"


결국, 엄마는 같이 화장실을 가 주셨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다.


"엄마, 꼭 기다려 줘야 해"

"응~알았어"


53세가 된 올해

나의 생일

늘 그렇듯 딸 주은이는

엄마의 생일을 챙겨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이번 주 생일 기념으로

가고 싶은 곳 있어?"

"응~작품이 멋들어지게 있는 전시 카페"

"알았어 "


커피와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것에 좋은 듯 싶다.

그날 오후 장애인 콜을 불러

우리 모녀는 전시 카페로 갔다.

벽에 작품들이 늘 같은 게 아니고

수시로 바뀌나 보다.

그것부터 구경을 했다.

모든 작품을 털실로 하다 보니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작품 중

기억나는 작품이라면

바다가 보이는 창문

내가 그 방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주은이는 음료를 주문했다.

난 사과차, 주은이는 커피.

저녁은 무얼 먹을지,

서로 소통을 나누는 우리 모녀.

그러다 우린 2층을 갔다.

주은이는 식사를 주문하고 오는가 보다.

그새 난 화장실이 급해지고

주은이와 다녀오자

드디어 나왔나 보다

스파게티와 돈가스.

무얼 먹어도

주은이와 먹는 건 다 맛있다.


배도 부르고 조금 더 구경하다가

집에 가려고 장애인 콜을 불렀다.

하늘은 비가 오는 듯 하더니 망설이고

변덕이 어린아이 같다.

문밖을 나서니 유모차가 있었다.

근데, 사람이 타는 게 아니라

강아지가 타는 거라나

그러게 신기했다.


장애인 콜이 도착했다.

돌아오는 그 길이 행복이었다.

배부르고 맛있고

무엇보다 구경을 잘했고

집에 도착하고 쉬려고 하니

주은이는 선물을 주었다.

갤럭시탭 전용 블루투스 키보드.

시각 장애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카톡도 하고 하는 걸 보았는데

나도 그걸 갖게 될 줄이야

행복했다.


안 그래도 한소네 빌리고

다시 반납하고

그걸 반복하자니

늘 아쉬웠는데 기쁘다.

키보드를 쓴 지가 오래되다 보니

다 잃어 버렸는데, 다시 도전.

키보드 위에

점자스티커를 직접 만들어

모두 붙여준 주은이가 고마웠다.

그 덕에 서투른 시작으로 힘겹게 써본다.


그러고 며칠 후

주은이 남자친구가

케이크 쿠폰을 보내준 모양이다.

생크림딸기케익을 나눠 먹었다.

얼마 전 주은이가 신발도 사주고,

가방도 사줬는데

아르바이트 한다고

돈 많이 쓴 건 아닐까?

그래도 그 어느 때 생일보다

행복한 생일인 듯 싶다.

친정 엄마와의 생일,

그리고 주은이와의 생일.

세월은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지만

행복감은 하늘만치 땅만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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