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우리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 품에 안아 본 아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고,
나는 가장 먼저 그 작은
손과 발부터 살펴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손가락과 발가락 열 개,
모두 건강하다고 말했지만
나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살짝 만져본 그 느낌은
정말 작고 보드라웠다.
출산 뒤 병원에서 지낸 3일 동안
엄마들을 모아 모유 수유를 해보게 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작디작은 나의 아이는 내 품에서
스스로 모유를 찾는 본능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에 나오더니
모유를 먹는 힘도 씩씩했다.
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중년의 여성 봉사자가 다가와
부은 얼굴을 살살 마사지해 주고
모유가 잘 돌도록 찜질도 해주셨다.
아마 복지 서비스 덕분이었을 것이다.
병원비도 저렴했고,
아이를 돌보는 도우미도 지원해 준다고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여쭈었다.
“여기가 친정이고
지금은 구미에 살고 있어서
구미로 돌아가면 그 서비스를 받고 싶어요.
전국 어디서든 가능한가요?”
그분은 가능하다고 했고,
한 달 후 구미로 돌아가니
그때 신청 하기로 했다.
그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퇴원하는 날,
엄마는 우리 손주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정말 정성스럽게
나와 아이를 보살펴주셨다.
아이 씻기는 방법,
모유 먹이는 자세,
옷 입히는 법,
기저귀 가는 법,
이유 없이 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엄마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아빠는 딸이라 처음엔 살짝 서운해하더니,
막상 보니 너무 예뻤나보다.
잠든 손주 모습을 여러 장 찍어두고
혼자 흐뭇해하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를 고생시키며 나오기도 한다지만
우리 아이는 엄마 힘들까 봐
그런 과정도 짧게,
단숨에 나와 주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마 둘도 없는 효녀겠지.
잘 자던 아이가
쌕쌕 작은 숨을 쉬며
기지개를 켜고 깨어났다.
그리고 엄마를 찾는다.
나는 가슴을 내주고,
아이는 힘 있게 먹었다.
그 작은 입술이
말로 다 못하는 행복을 이끌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