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돌이 다가 왔다.
우리 아가 처음 태어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
우리 아가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았다.
무엇보다 처음 태어나던 날
"손가락 발가락 모두 정상 아가입니다"
라는 말에 외할머니는 창피함도 잊은 채
덩실덩실 춤부터 추었고,
3일 만에 퇴원해 외할머니 집에 왔을 땐
할머니는 두 손 모아 빌었다.
아가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 아가가 돌잡이를 하게 되었다.
아가 아빠는 몇 주 전부터
우리 아가 돌잔치 해주고 싶어
집 근처 배 모양의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백일 땐 사진만 찍어준 게 전부였는데
나 역시 기쁘다.
돌잔치는 하니 말이지
뜨거운 여름 7월 9일
가족들 다 모이고 돌잔치를 했다.
그러나
손님이 다가와도 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잘 보이지 않아서
목소리를 들어도 누가 누구인지 못알아봤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작아지는 기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약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대신 아이 아빠가
발에 불이 나도록 테이블을 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교회 분들도 오시고,
아기 아빠 친구들도 오고,
친정 부모님과 오빠들.
그 덕에 참 행복했다.
주은이 친할아버지 기도로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기독교가 아닌 친정 부모님도
딸을 위해 손녀를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같이 기도로 행사를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고
예쁘게 한복 입은 우리 아가는
눈앞에 연필과 돈,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고민하는 걸까?
입으로 손을 가져가던 아이는 돈을 집었다.
그리고 가슴에 꼭 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진행자분은 그때
"우리 주은이 부자 되고 싶어요."
하며 웃으셨다.
그때 모두 손뼉을 쳐주셨다.
엄마가 다가오셨다.
"너도 밥을 먹어야지, 같이 먹자"
그 덕에 그제야 허겁지겁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되고
엄마 아빠 가시는 것도 보고 나니
아쉬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아기 아빠와 나는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려는데 직원분이 말씀 하신다.
"부부보다 형제 같아요.
서로 많이 닮았네요."
하며 웃으셨다.
집에 돌아와 보니 긴장이 풀려 그런지
피곤함이 너무 컸었다.
그래도 잘 지나간 것이 감사한 하루였다.
그땐 아가가 돌이면
선물로 반지 해 주시는 시절.
그러나 1돈에 7만 원.
그러다 보니 반지보다 옷 선물이 더 많았다.
부모님이 해주신 돌 반지와 팔지 가 참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