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외딴섬 로맨틱을 우린 꿈꾸다 떠내려왔나
퇴사가 결정되자마자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고, 마음을 먹으니 돈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돈뎃은 내가 4년 전 동남아시아 일주를 했을 때 루앙프라방에서 장염에 걸려 가지 못했던, 라오스 남부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라오스에 섬이 있다고?
라오스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에 둘러쌓인 내륙국가이다. 라오스에는 4000개의 섬을 의미하는 시판돈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메콩강 위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합쳐 시판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돈뎃은 시판돈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보통의 여행자들이 돈뎃으로 갈 때는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여행을 하다가 육로를 통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이미 나는 태국에서 열릴 The 1975라는 밴드의 콘서트를 예매해놨기 때문에 라오스를 여행할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돈뎃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비엔티엔에서 팍세로 가는 국내선 항공권은 내게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발품을 팔아 아래와 같이 저렴한 루트를 발견했다.
인천 - 방콕 - 우본라차타니 - 팍세 - 나카송 - 돈뎃
집에서 출발하는 것까지 합하면 무려 7번의 환승이었다. 게다가 공항노숙과 3시간 썽태우까지 돈뎃으로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다.
집을 떠난지 약 29시간만에 나카송에 도착을 했는데 돈뎃으로 가는 보트를 타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혼자 타면 5만낍, 사람들이 어느정도 모이면 2만낍에 돈뎃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는 5만낍을 내겠다고 했지만 기다리라고만 했다.
혼자 앉아서 보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웬 만취한 캐나다 아저씨가 드러누워있고 그 옆에는 캄보디아 여자가 같이 있었다. 돈뎃에 가야하는데 캐나다 은행 점검시간이라 오후 7시가 되어야 ATM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친구라고 하는데 캄보디아 여자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캐나다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 그 여자에게 왜 자신을 못믿냐며 호통을 쳐댔다.
팔려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여자의 표정이 좋지 않아 나는 친구가 맞냐 물으니 친구는 맞다고 하는데 뭔가 수상해보였다. 어쨌든 그 사람들도 돈뎃으로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니, 나는 이 사람들의 보트 비용까지 낼 테니까 제발 돈뎃으로 들여보내달라고 말했다.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나카송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 셋은 보트에 함께 올라탔다. 캐나다 아저씨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딸기에 이슬을 먹고 잔뜩 만취한 채 보트에 올라탔다. 바지를 저스틴비버마냥 한껏 내린 채로.
여차저차 집 떠난지 30시간만에 돈뎃 땅을 밟았다. 오는 길은 지옥같아서 '그냥 집에서 쉬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했지만, 노을지는 메콩강을 바라보니 옛날에 왔던 라오스 북부도 생각이 나고, 드디어 내가 그렇게나 가고싶었던 돈뎃에 발을 디뎠다는 생각에 신기한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다.
돈뎃 선착장에 내려서 숙소로 가려는데 캄보디아 여자가 날 붙잡았다. 저 아저씨랑 같이 가면 자기는 4명의 남자들이랑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돕고 싶었다. 만약 친구가 아니면 말해달라. 내가 다시 나카송으로 가는 배를 태우든 숙소를 구해주든 할테니 말해달라고 했지만 계속해서 친구라고 했다. 이미 10번 정도 둘의 관계에 대해 물어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친구라는데 어쩌겠나. 도와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결국 ATM에서 뽑았던 돈 중 10만낍을 몰래 손에 쥐어주고 이걸로 숙소 구하고 저 남자한테서 도망치라고 한 후 나는 숙소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