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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Nov 04. 2023

몽골 | 하르노르

다시 게르로 돌아왔다. 깨끗한 게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오늘도 역시 이 넓은 숙소에는 숙박객이 우리 뿐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생겼다.

단순히 4명이라 하르노르 비틀즈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 송아지들은, E 송아지 한 마리와 I 송아지 세 마리가 친구들인 듯 보였다. 조금 친해지려고 다가갈 때면 I 송아지 세 마리는 도망가기에 바빴고, E 송아지 한 마리는 내 손에 촉촉한 코를 들이밀었다. 

알고 보니 이 송아지들은 태어난지 10일, 2달 된 아기들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준수가 


“내일 되면 한 마리 없어지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낭만이 깨졌다. 어쩌면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더럽게 떡진 내 머리를 벅벅 긁는 일도 그만하고 싶어서 빨리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보일러가 얼어서 물이 아예 안 나온다고 했다. 


그럼 저 오늘도 못 씻나요…?

못 씻은 지 4일 차이다. 나는 결코 내가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나 못 씻으니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친절한 집 주인은 호숫물을 길러다가 물을 끓여서 준다고 했다. 


“누가 먼저 씻을래?”


내가 지아씨와 먼저 씻겠다고 했다. 육백수들도 흔쾌히 오케이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 등으로 따수운 물을 맞이하러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실 칸도 나누어져있고, 양변기가 세 개나 있는 깔끔한 이 숙소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게 중요할 때가 아니라 몸을 씻는 게 우선이었다. 


“와 너무 따뜻하다. 나 여기서 나가기 싫다.”


“슬현아 이거 미친 거 아니야? 너무 따뜻해 와 미치겠어"


우리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물을 굉장히 오랜만에 맞았다. 


콸콸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은 아니였지만 이 날의 행복은 감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지금와서 그 때의 기분을 다시 상상하려고 하니 살짝 가물가물 한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너무나도 뽀송하고 행복했는데.


숙소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오랜만에 ‘잠' 대신 ‘자유시간'을 얻었다. 누구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누구는 낮잠을 자고, 누구는 저 멀리 산책을 나가는 그런 자유시간 말이다. 

낮 시간을 대부분 푸르공에서 보내왔던 육백수들에게는 특히나 이런 자유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행복했던 소식은, 하르노르 숙소에서 2박을 할 예정이기에 내일 짐을 쌀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이게 제일 행복했다. 매일같이 짐을 싸고 푸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꼈으니까.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고기가 들어있는 탕을 보자마자 탄식했다. 아, 또 양고기다… 하면서.

쉽게 먹을 용기가 나지 않던 참에 누군가 먼저 먹고서는 대답했다.


“야 그냥 갈비탕 맛이야"


갈비탕을 여기서? 그런데 정말 갈비탕 맛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갈비탕 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내셨을까. 한국의 맛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다음날 아침엔 미역국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드님이 한국에 산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한국에 산다고 한들 이렇게나 한국인의 입맛을 잘 맞출 수 있는 걸까… 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나는 이 밥이 몽골에서 먹은 밥 중에 모두에게 최고의 식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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