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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Sep 19. 2023

몽골 | 푸르공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몽골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여행 수단이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푸르공, 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원한다면 스타렉스를 택한다. 푸르공은 러시아의 군용 차량으로, 오프로드를 달리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차량이다.


깡통처럼 생겨서 얼마 안 할 줄 알았더만, 푸르공 한 대 가격이 8천만 투그릭,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3,200만원이란다. 게다가 옵션은 덤으로 주지도 않는다. 의자, 커튼, 갖가지 기능들은 차량 주인이 추가해야 한다. 그래서 기사님들의 취향대로 꾸며진 각기 다른 매력의 푸르공을 볼 수 있다.

모두들 인터넷에서 ‘몽골'을 검색했을 때, 낭만 가득한 푸르공과 몽골의 초원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낭만있을 줄 알았다.


3주 내내 푸르공을 탄 사람으로서 슬쩍 푸르공에 대한 의견을 내어본다. ‘내가 이러려고 돈을 냈나' 라는 내 여행 경비에 관한 깊은 고찰까지 하게 된다. 



첫째. 푸르공은 매일 고장난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했던 3주 동안 푸르공이 멀쩡하게 굴러갔던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마다 어딘가 삐끗하는 푸르공에 어기는 늘 차를 세웠다. 어기는 약 20년 째 푸르공 기사를 해오고 있었는데, 푸르공이 오래되어서 그런 건 아닐지 궁금했다.


“푸제, 푸르공이 오래돼서 매일 고장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새로운 차도 이렇게 자주 고장나요. 포장도로만 달리면 괜찮을 텐데 푸르공은 대부분 오프로드를 달리니까. 차가 매일 오프로드를 통통 튀니까 부품도 같이 튀어서 뭐가 빠지고 그래요.”


어기의 차가 오래될 만큼 오래되었기에 푸제의 대답을 100%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멀쩡한 차량도 매일 5시간 이상 돌 길을 달리면 멀쩡할 수 없다는 것도 납득이 갔다.



둘째. 불편한 자리를 감내하고 앉아야 한다.

모두가 매일 편한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어기의 푸르공은 3명이 역방향에 앉아야만 했는데, 나는 역방향에 꽤나 자주 걸렸다. 우리는 역방향에 자주 걸리는 사람들을 보고 ‘역병’에 걸린 자들이라 불렀는데, 준수, 나, 유진. 이렇게 셋이 주로 ‘역병 환자'였다. 


푸르공 자리 정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게임을 통해서, 평화롭게 매일 돌아가면서 앉기, 우리처럼 사다리 타기. 우리는 주로 사다리를 택했고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날에는 오프라인 사다리까지 만들어가면서 사다리 게임에 집착했었다.


하루는 바양작에 가던 길에 모래폭풍을 만났다. 나는 당시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였기 때문에 차에서 계속 잠을 자고 있었는데, 차가 계속 가다가 멈추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밖을 봤는데 하늘이 노란색이었다. 푸르공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푸제의 말로는 엔진에 열이 받아서 그렇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물을 다 넣어서 열을 식히려 했는데도 모래폭풍의 영향인지 푸르공이 그 날만 한 20번은 멈췄던 것 같다. 결국 근처 유목민 집에서 해결했지만. 이 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모래폭풍> 에서 할 예정이다.



나 같은 사람이 몽골에 가면 궁금한 게 참 많이 생긴다. 푸르공 기사들은 네비게이션도 없는 길을 어떻게 잘 찾아가는지, 구글지도에 있는 몽골 국도는 실제로 보면 그냥 돌 길, 말 그대로 오프로드인데 이 길이 어떻게 구글지도에 ‘도로'라고 명시되어 있는지. 그냥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푸르공 기사들은 몽골의 지리를 그들의 머릿 속 네비게이션에 저장해놓는다고 했다. 어기는 네비게이션을 볼 수 없는 상황일 때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고 지리를 파악한다고 했다. 요즘같은 세상에 산맥으로 지리를 파악한다니.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21세기와는 참으로 동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차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보며 ‘꽤나 낭만있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었다.



어기는 말 그대로 맥가이버였다. 못하는 게 없었다. 푸르공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푸르공을 황무지 벌판에 세워놓고 차에서 부품을 꺼내 수리를 했다. 



푸르공의 내부는 점점 업그레이드 된다. 의자, 에어컨, 충전기, 스피커, 손잡이, 커튼 등 모든 것이 기사의 재량이다. 때문에 모든 푸르공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푸르공은 역방향, 어떤 푸르공은 여섯명 모두 순방향에 앉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순방향 푸르공을 보고 더 편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잠시 부러움을 내비췄을 때가 있었는데, 유진언니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아니야 그래도 역방향에 앉아서 서로 얼굴보고 웃고 놀리고 하는 거지. 여섯 자리 다 순방향이었으면 우리 서로 얼굴도 안보고 차에 있는 동안 휴대폰만 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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