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라는 삶의 방식

by 혜준

중학생쯤 되었을까.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전철 칸 한복판에서 이쪽을 향해 멍하니 서 있었다. '아, 토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의 입에서 적은 양의 물과 밥알이 쏟아져 나왔다. 학교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즐겁게 수다를 떨던 나와 내 딸의 친구 엄마는 그 찰나, 돌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친구 엄마는 민첩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이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히며 "괜찮니?"라고 안심시켰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철 바닥을 치울 티슈와 비닐봉지를 구했다. 나 역시 그녀와 함께 뒷정리를 돕기는 했지만, 재빨리 움직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귀가했던 것이 올봄의 일이다. 그 후로도 문득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라, 왜 나는 그녀처럼 즉각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유난히 덥던 올여름 어느 날, 장을 보러 나왔다가 길가에서 허리를 다치셨는지 떨어진 손수건을 좀처럼 줍지 못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그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가 손수건을 주워 할아버지께 건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순수하게 기뻤다. 이 일은 전철에서의 무거운 마음과 연결되어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즉시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친구 엄마와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행동에 시차가 발생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나는 그 시차를 마치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으로 느끼는 걸까.



깊이 고민한 끝에, 나는 내가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신과 익명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구 엄마와 있을 때 주저했던 것은, 너무 나서는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지인이 "한국에 도착하니까 어깨에서 힘이 쓱 빠지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동안 내가 일본에서 얼마나 긴장하며 살아왔는지 알겠더라니까"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차별 같은 문제를 떠나,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살고 있다는 무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짐으로 짊어진 채 긴장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마음을 놓고 내 집 안방인 양 당당하게 살 자신도 없다.



그래서 내가 남몰래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손님(客)」으로서의 삶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디에 있든 나는 한 사람의 '손님'으로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나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서도 '손님'으로서 대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초대받았을 때, 손님으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떠올려 보자. 기품 있는 행동, 세련된 매너를 몸에 익힌 '손님'. 기적 같은 인연으로 지금 이 시간, 지구라는 공간에 초대받은 우리들 '손님'끼리이기에,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감사와 배려, 경의를 잊지 않고 대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나 자신이 '불청객'이 아니라, 필요로 하고 환영받는 '손님'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다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