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
아이들이 성장하며 비좁아진 소파를 두고 우리 가족 네 명의 쟁탈전이 연일 이어졌다.
어떤 소파가 좋을지 남편과 상의하던 중, 남편과의 가치관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남편은 "인생은 등산"이기에 소파 같은 가구는 짐이 될 뿐이라고 했다. 어차피 버려질 물건이니 싸고 버리기 쉬운 것이 최고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반면 나의 생각은 막연하게나마 늘 "인생은 여행"이었다.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즐기고 싶었다. 결국 소파 구매보다는 인생관에 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 말았다. 남편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정상"이라는 게 있고,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올라간 뒤 "죽음"이라는 골인 지점을 향해 서서히 내려오는 과정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과연 인생에 ”정상"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흥미로웠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면서 가치관이 정립되는 것일까. 결론 없는 남편과의 논쟁 후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정상”이 없는 여행 같은 내 인생에 대해서.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다정한 가족들 곁에서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도 하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할 시점에 나는 돌연 다음 여행을 결심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온전한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학문을 깊게 파고들면 좀 더 똑똑한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건너온 곳이 일본이었다. 여기서 남편을 만나면서 한국 유학생이라는 여행자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여행자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다. 박사 논문만으로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 학위 취득은 연구자로서의 시작점일 뿐 종착역이 아님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과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내 여행의 목적은 학문을 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깊게 만드는 데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연구자, 아내, 엄마라는 역할을 두루 해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인생을, 여행을 즐길 수 없었다. 논문을 생각하면 매달리는 아이들이 성가시게 느껴졌고, 결혼 후에도 아무런 지장 없이 연구자로 활약하는 남편에게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새로운 여행은 어느덧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것으로 바뀌었고, 후회는 없다. 친정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결국 결혼해서 애 키울 거라면 뭐 하러 멀리 일본까지 갔느냐고.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여행사의 편안한 패키지 여행과 무전 배낭여행의 차이를 엄마는 아실까... 혹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던 후지산과 직접 맨눈으로 마주했을 때의 그 거대한 후지산과의 차이를...(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냐고 하실 엄마가 떠오른다...)
다들 알다시피 여행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괴롭고 부끄러운 일, 불편함도 늘 뒤따른다. 여행이고 뭐고 서둘러 돌아가 쾌적한 집에서 편하게 뒹굴고 싶어질 때도 있다. 사실 지금 나의 여행은 험난한 국면을 맞이해 포기 일보 직전이다. 사춘기 연년생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무력감에, 여행을 끝내고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예전처럼 또 다른 여행지로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이번 여행엔 동행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이제껏 육아서, 동영상, 상담 등 내 아이들을 살피는 대신 외부의 정보 수집에만 무아지경으로 매달렸다. 아이들의 자립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서 한국인으로서 필요한 인재로 만든다는 일념하에 수험과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쳐버렸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정보 수집과 스케줄 작성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서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아 진 여행자처럼.
물론 이것은 단순히 아이들의 사춘기 문제만은 아니리라. 인간으로서 나의 성숙도와 직결된 문제일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내 마음대로 계획하려 드는 나의 미숙함을 자각하면서도, 불안과 초조함에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를 향한 분노의 문제다. 이것을 깨달은 지금이야말로 서로 각자의 여행을 떠나야 할 시기일지 모른다. 나는 불안과 초조함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새로운 성숙을 향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늠름해진 아이들의 뒷모습을 든든하게 배웅하면서 말이다.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낸 후 나의 여행은 어떻게 전개될까. 여행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사건이 멋진 추억이 되고, 오히려 힘들었기에 더욱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죽음을 향해 나아가되, 후회하지 않도록 이 순간을 소중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가끔은 이런 글을 여행지에서 친구에게 보내는 그림엽서처럼 써 내려가면서.
평행선으로 끝난 새로운 소파 논쟁. 이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내 멋대로의 여행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참 많은 폐를 끼쳤음을 알게 된다. 반성의 의미로 새로운 소파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