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처리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좋아해!!

by 혜준

19일 기말고사를 끝으로 길고 긴 봄방학이 시작되었다.

오늘 채점을 다 끝냈으니 이제 입력만 하면 된다.

그런데 너무 하기 싫다.

답이 맞고 틀리고를 채점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다. 부분 점수를 합산할 때는 틀리지 않도록 긴장해야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출석부에 기입된 점수와 학생들 이름과 얼굴을 떠올려 가며 마지막 점수 조정을 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좀처럼 컴퓨터 열기가 꺼려진다.



예전에는 학생들 얼굴도 이름도 금방 외웠다. 강산이 두 번 하고도 조금 더 지나는 동안, 이제는 얼굴은 알아도 이름이 얼른 나오지 않아 난처할 때가 많다. 그래도 학생들이 "와! 선생님 제 이름을 아세요?" 할 때의 귀여운 표정이 보고 싶어서 난 욕심을 낸다. 다 외워 버릴 테다. 학생들의 불만 가득한 야유에도 난 한 학기 내내 지정석으로 앉혀가며 길고 긴 일본 이름과 얼굴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성적입력을 하자니..... 결석도 안 하고 지각도 안 하고 수업 태도도 좋고 숙제도 잘해 오고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잘하고 늘 싱글 생글 웃는 범생이들이 시험을 너무 못 봐서 도저히 학점을 딸 수 없는 상황이다. 난 갈등한다. 차라리 얼굴이랑 이름을 안 외웠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까?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좋아해"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보기 전까지 이 말은 나에게 있어서 불변의 진리였고 불만의 근원이었다. 선생님은 못하는 아이들, 선생님을 좋아하지만 부끄러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더 살뜰히 봐주셔야 하는 게 옳다고 입을 삐쭉대던 나였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니 선생님들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공부 잘하는 애들이 이쁘다. 공부 잘해서 이쁜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눈을 반짝이며 듣는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고 그 태도가 예쁘다. 그리고, 부끄럼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먼저 밝게 인사하고 싱글 생글 웃으며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예의 바른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공부도 잘하고 인사도 잘해서 선생님들께 사랑도 많이 받았을 텐데......

왜 무슨 일이든 지나 봐야 알게 되는 걸까?



그나저나 시험을 망친 이 범생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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