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感動)에 대해서

릴레이 경기를 보신 적이 있나요?

by 혜준

"사람한테 감동을 줘야지!"

엄마는 아빠의 무심함에 늘 이렇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어릴 적 이 감동이라는 말은 나에겐 늘 수수께끼였다.

도대체 감동이라는 게 뭐길래 아빠는 왜 엄마한테 저렇게 혼이 나는 걸까?

얼마나 값지고 진귀하길래 엄마는 저렇게 원하며 아빠는 못 구해와서 저렇게 쩔쩔매는 건지...



이제껏 5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경치를 접하거나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면서 적지 않게 감동이라는 말을 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나는 감동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긴 한 걸까? 감동이라는 말은 행복이라는 말처럼 너무 많이 하고 들어서 마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감동이나 행복이란 개념들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늘 주관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로서 감동(感動)이 어떤 것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아서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그 어떤 것은 다름 아닌 릴레이, 그것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릴레이 경기이다. 일본의 학교 운동회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연례행사로 홍백 두 팀으로 나뉘어 응원단도 결성되고 부모님은 물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경우 할머니 할아버지도 참석하시는 본격적인 이벤트이다. 우리 아이의 멋진 활약을 놓칠세라 명당을 잡기 위해 아빠들은 회사에 연차를 내어가며 새벽부터 줄 서기를, 엄마들은 새벽부터 준비한 오색찬란한 그 유명한 일본벤또를 차곡차곡 담아 양산까지 챙겨 우아하게 등장한다. (누가 한국 부모를 극성이라고 했던가!)



어릴 적부터 운동회를 벌레보다 더 무서워하던 나도 구경은 신이 나서 일본 벤또에 질세라, 오색찬란 김밥을 말아 참기름 냄새 펄펄 풍기며 줄을 서서 입장하곤 했다. 땡볕 아래 서서히 에너지가 고갈되어 갈 때쯤, 학년 별 릴레이가 시작된다. 나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아 달리기가 너무나 어려운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뽑히지 못했던 학년 대표의 릴레이는 혈연을 뛰어넘어 민족을 뛰어넘어 홍백을 뛰어넘어 운동장의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야말로 감동(感動)의 도가니가 된다. 다들 목청 높여 간바레(힘내라)를 외치고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속에서 나는 감당이 안 될 만큼 눈물콧물을 줄줄 흘리며 간바레, 간바레....

올해는 제발 눈물이 안 나오길... 하고 기도하지만 매년 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릴레이는 친구 엄마들과는 떨어져 혼자 응원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릴레이는 감동 그 자체이다. 특히 아이들의 릴레이에서 보이는 그 필사적이고 무조건적인 몰입. 뛰고 있는 동작과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순수함과 열정에 마음이 강하게 움직임을 느낀다. 아마도 아이들의 릴레이가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자기가 빠르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닌, 팀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배턴(Baton, 바통)으로 연결된 공헌을 기반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리라.



"열심히""최선을 다하는"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빛이 바랜 말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요즘. 나는 무슨 일이든 결과보다 이 "열심히""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열심히""최선을 다하는"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행동했을 때, 그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감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릴레이 경기가 끝나고 난 뒤 팀에 관계없이, 승패에 관계없이 선수 모두가 서로의 어깨를 얼싸안거나 다독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내 눈물샘에서 또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 엄마도 아빠에게서 이런 감동을 원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