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양이 아니었다
한동안 양치기 소년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 많은 양들을 설렁설렁 양지바르고 툭 트인 넓은 초원으로 데리고 가서 지키며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 동네 사람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놀 여유가 있는 그 베테랑 양치기 소년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아니면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도달한 결론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육아는 "방목"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부모가 자신의 확신과 계획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양육 방식도, 자유로움을 넘어 학대의 한 종류인 방치의 양육 방식도 위험하다면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반추한 결론이었다. 사회적 규범이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부모로서 잘 가르치되, 그 외의 것들은 아이의 의지에 맡기는 게 이상적인 양육이라고 나는 혼자서 무슨 대법칙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일기장에 흥분해 적어 두었다. 그리고 내 육아는 이제 성공밖에 없다고 콧구멍으로 뜨거운 김을 냈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먼저, 도대체 양들이 어디까지 가도록 허용해야 하는지 그 울타리의 범위를 정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저기까지? 어디까지냐고요..... 그걸 내가 정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 어려운 것이 아닌가. 그래, 감옥에 가지 않을 행동만 하면 되겠지라고 대충 울타리를 쳐 놓고 보니 그 안에서 양들이 하는 짓들이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 그 몸에 안 좋은 풀을 뜯는 거냐? 왜 풀 뜯을 시간에 자고 있는 거냐? 털 관리에 신경 좀 써라..... 도대체 양들에게서 내 시선이 떠나질 않는 거다. 게다가 어릴 때는 겁도 많고 고분고분하던 양들이 조금 컸다고, 초원이 좀 익숙해졌다고, 양치기랑 맞먹으려고 하지 않는가.
양치기 소년의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 수 배우고 싶었다. 나도 여유 있게 양치고 싶다.
양들을 믿고 지켜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를 고민하다가 나는 또 하나의 대발견을 했다.
우리 양들은 혹시 양이 아닌 건 아닐까? 늑대일지도....라는 발상의 대전환.
처음부터 양이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고분고분하고 수동적인 심성 고운 양이 아니라 울타리 같은 거 힝! 하고 콧방귀 뀌는 자연의 야성을 지녔고, 강인한 외형 안에 사회적이고 지능적인 성향을 숨기고 있으며, 무리를 읽고 가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 마리의 고고한 늑대일지도 모른다.
늑대를 "방목"하려 했던 한 어리석은 양치기가,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