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없는 엄마

안아 줄 수 있는 용기

by 혜준

내가 우리 언니를 그 누구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신뢰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어릴 적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나를 꼬옥 안아주었던 단 한 번의 그 따뜻함 때문이다.

언니와 나는 세 살 차이로 나이 차이는 별로 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독일제(Made in Germany)"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언니를 선두로 한 살 아래로 오빠, 나, 남동생을 연년생으로 낳아 키운 혁혁한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2남 2녀는 거짓말과 하극상만큼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엄격한 가정교육 덕분에 다투는 일이 간혹 있어도 이름을 마구 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서 언니는 나이를 초월한 뭔가 크고 넓은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무슨 일로 언니에게 그렇게 폭 안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따뜻함을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듯한 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도 힘들고 지친 누군가를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은 이해가 되고 헤아려져도 거기서 한 발자국 내딛을 용기가 없다. 단순한 부끄러움일까? 경험치 부족일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어제 딸아이가 학교 오는 길에 연락을 했다. 오늘 둘이서만 저녁을 먹고 싶다고..... 집에 있던 남편과 아들은 말로는 서운해하면서도, 요즘 사춘기인지 본성인지 알 수 없지만 삐리삐리 날카로워져 있는 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 채, 둘이서 얼른 나갈 채비를 차렸다. 나도 시간에 맞춰 딸아이가 좋아하는 곳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딸아이가 멋쩍게 웃으며 용건을 이야기했다. 동아리 부장은 다른 친구가 되었다고. 소극적이고 게으른 딸아이가 유일하게 희망하던 감투였다. 어릴 때부터 눈에 띄는 걸 싫어하고 귀찮은 걸 딱 질색이던 딸아이기 부장 자리를 노린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했던 나도 내심 딸아이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자기 속이야기를 잘 털어놓지 않는 아이라 이번에도 역시 사실만 보고하고 자기의 기분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나도 손쉬운 위로의 말은 하고 싶지 않아 묵묵히 지글지글 돌솥비빔밥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열심히 긁어댔다. 다른 엄마들은 이럴 때 어떤 현명한 말로 아이를 다독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딸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조용히 아이 가까운 곳에 놓는 것 밖에는 없었다.



우리 딸아이에게 제일 필요한 위로가 무엇일까? 밤새 생각해 봤지만 다 껍데기 같은 말 뿐이다.

갑자기 언니의 따뜻함이 생각이 났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건 내가 받은 위로 중에 가장 귀중하고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가 나의 위로에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면 어쩌지? 내 진심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굳어진다.



오늘은 토요일. 오전 수업만 하고 돌아올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보고 싶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포옹을 공격으로 느끼지 않도록 서로의 마음이 차분한 때, 내 위로의 마음이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느껴질 때,

그때 아무 말 없이 쓸쓸할 우리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