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하는 시간

추억이 의무가 되지 않기를

by 혜준

나는 어느 계절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이런 말을 남편에게 던지면 기겁을 한다. 그는 죽는 게 무섭다고 한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난 봄이 좋겠다. 그리고, 몇 안 되는 내 지인들이 곧 다가올 뜨거운 여름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듯이 나에 대한 기억도 추억도 단정히 닦아 내길 바란다. 가을과 겨울은 너무 스산하고 추워서 추억할 시간이 너무 길 것만 같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걸까?



오늘은 남편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밤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를 합동으로 한다. 동병상련의 시누이가 어머니를 설득해 같은 날로 하게 되었다. 일 년에 두 번의 차례와 두 번의 제삿날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을 잡고 현해탄을 건너 이곳으로 오신다. 여긴 일가친척 하나 없는 우리 가족 네 명뿐이라 난 두 분이 저녁을 같이 드시러 온다는 감각으로 제사상을 차린다. 내가 제사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정엄마에 비하면 너무나 편하게 지낸다는 이상한 논리로 주어진 역할을 담담히 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향으로 장난을 치고, 제사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올려놓을 음식을 손으로 찔러보기도 하고, 절을 하자고 하면 아빠한테 똥침을 놓고 하더니, 이젠 제법 술을 치기도 하고 절을 점잖게 올리기도 한다.



아들이 장가를 가서 제사를 안 지낼 확률은 거의 99.9%에 가깝지만 난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제사란 추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 남편의 조부모에 대한 추억은 없다. 하지만 시부모님과 남편이 자신의 조부모를 추억하는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 싫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난 아이들이 정해진 날에 일부러 날 추억해 주길 원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이나 같이 걷다가 본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머릿속에 내 얼굴을 한번 떠올려 준다면 그게 오히려 기쁠 것 같다. 그걸로 충분하다.



어쩌면 제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세상의 며느리들은 제사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수반되는 해야만 한다고 정해져 있는 여러 가지 암묵적 룰과 평가가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만약 제사가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춰 조용히 선조들과의 생전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된다면, 따뜻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오늘 밤에 오실 남편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따끈한 탕국을 함께하며 혹시 능력이 되신다면 우리 아들 제발 휴대폰 보기를 돌같이 해 달라고 부탁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