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하면 하나도 안 웃겨

썰렁한 사람의 깨달음

by 혜준

"네가 하면 하나도 안 웃겨"

어디서 주워들은 웃긴 얘기로 나도 한번 웃겨 보려고 신경을 집중해 꼼꼼히 외운 다음, 혹시 또 썰렁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얘기를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늘 이랬다. 나에게는 비일상적인 재미와 흥분과 호기심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만들어 내는 신기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흉내도 잘 내고 어디서나 분위기 메이커인 엄마의 유전자는 모두 언니가 가져간 것 같다. 분하다.



여기에서의 생활도 다른 사람들은 한일 문화의 차이며 본인이 느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맛깔스럽게들 하는데 내가 얘기하면 왜 이리 무덤덤해지는지 모르겠다.

사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지구 어디를 가도 똑같을 것 같지만, 나도 컬처 쇼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번개라도 맞는 듯한 그런 날카로운 충격을 맛보고 싶다.



썰렁함을 각오하고 얘기하자면, 이곳 문화에 대해 "오호..." 하는 놀람의 순간들은 나에게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우개 커버였다.

처음엔 몰랐다. 그냥 잘 지워져서 아무 생각 없이 쓰다가, 엥? 사이드의 이 홈이 뭐지? 내가 안 그랬는데?로 시작된 의문은, 누구에게 묻거나 검색하거나 하는 적극성과 호기심도 없는 내가 혼자 가만히 생각한 결과, 혹시 사용 중에 지우개가 부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라는 답에 도달했다. 지금도 내 짐작이 맞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 혼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상술이라기보다는 쓰는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느껴져 난 그 후로도 계속 이 지우개를 애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이런 배려가 조용히 숨어있다.



두 번째로 "아, 여긴 일본이구나"하고 실감하게 만든 것은 전철 손잡이였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전철에 앉아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니, 엥? 손잡이의 높이가 들쭉날쭉 다르지 않은가! 승객의 키를 고려한 다양한 높이의 손잡이가 대롱대롱 전철의 흔들림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우리나라는 2009년도부터 일부 전철에 높이가 다른 손잡이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런 잔잔한 배려가 오래오래 따뜻하게 남는 것 같다. 나한테는 당연한 것이 타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혹은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타인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다는 깊은 생각에서 나온 배려는 따뜻하다. 우리나라에는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뜨거움이 있지만 이곳에는 너와 내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다. 온도의 차이는 있어도 양국에는 따뜻함이 있으며 그걸 서로 느낄 수 있기에 어느 나라보다 서로를 치열하게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나 보다.



내 이야기가 늘 썰렁했던 것은, 웃기고 싶은 내가 앞서 버려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배려를 잠시 미뤄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