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언제부터 강박이 되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토끼와 거북이" 그리고 "개미와 베짱이"였다.
알다시피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꾸준한 노력의 소중함이다.
지금 비록 힘들고 지치더라도 목표를 향해서, 미래를 향해서 꾸준히 성실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자, 하자, 아자!!!
이 정신은 우리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내가 담당하는 학생들의 세뇌에까지 이어졌다.
수업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열심! 노력! 성실! 이런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뺀질뺀질 지각하고 수업태도 불량하던 학생이 시험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가 제일 얄미웠다. 그래서 출석과 수업태도, 쪽지시험, 기말시험 점수를 골고루 반영한 빈틈없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람마다 재능은 각자 다르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태도는 자기 의지의 문제이고 성실성의 문제이니 그것이야말로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흙수저 타령이나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는 일본의 냉소적인 신조어인 오야가차(親ガチャ)*라는 말도, 그저 노력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핑계,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환경이나 처지를 한탄할 시간에 어떻게든 자신을 레벨 업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한심해했다.
만약 학생들이나 우리 아이들이 "내 나름대로(自分なりに) 노력했다"는 말을 꺼내면, 나는
"뭐라고? 내 나름? 결과가 나올 만큼 노력을 해야지. 대충 노력해 놓고 그걸 내 나름이라고 포장을 해? "
라는 말이 금세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 그 충동을 참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철옹성 같던 내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목표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노력은 의미가 없는 것이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한 노력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학습태도를 보면서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는 거지?"하고 답답해한 것도 다 이런 문맥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나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모르면서 그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으면 무조건 노력을 안 한다고 혼자 울그락불그락했던 것 같다.
말로는 "열심히 노력해서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관대한 엄마인 척하면서, 정작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이의 노력을 부정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난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야말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가. 혹은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가.
대답이 궁해진다.
나는 실제로 열심히 살았다기보다는, 단지 '열심'이라는 강박 속에 갇혀서 살았고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그리고, 날 지배하고 있는 '열심'강박은 언젠가부터 그 대상이 내 아이들과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되어 그들에게도 '노력'이라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요구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불안해진다는 면에서도, 확실히 나는 '열심'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정욕구에서 생긴 이 '열심' 강박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금방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기에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 본다.
쓰다 보니 어느새 글이 나 자신에 대한 분석으로 흘러가 버렸다.
많이 부끄럽지만, 브런치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들여다볼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오야가차(親ガチャ)에 대해서는 [박소영의 일본 읽기] ‘오야가차’ 당신의 부모라는 주사위 | 중앙일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