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투는 안녕하십니까?

내 말에 입힌 옷은 '외투'였을까, '가시'였을까

by 혜준

말투(말套)라는 말은 고유어인 줄 알았는데, 말이라는 고유어에 '씌울 투(套)'라는 한자를 더한 합성어라고 하네요.

궁금해서 인공지능의 지혜를 빌려보니 '씌울 투'는 봉투, 외투와 같은 단어에도 들어가 있는데, 원래 '덧씌우는 옷'이나 '덮개'를 뜻한다고 해요. 그리고 이것이 파생되어 '틀', '방식', '습관'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대요.

그러니까 말투란 말에 어떤 '틀(덮개)'를 씌웠다는 뜻이 되겠어요.

예를 들어 "미안해"라는 말에 '진심의 틀'을 씌우느냐, '비아냥의 틀'을 씌우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원리와 같아요.


말투는 단순히 목소리의 높낮이가 아니라

첫째, 언어적 틀(어미와 조사) - 문장을 마무리 짓는 어미(경어체, 반말체 등)

둘째, 비언어적 틀(억양과 속도) - 말의 빠르기, 억양, 성량 등

셋째, 심리적 틀(태도) - 상대를 대하는 마음가짐( 다정함, 냉소, 겸손, 거만함들이 말이라는 알맹이 위에 '덧씌워져' 나타남)

이상의 세 가지 층위가 겹쳐진 결과물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말투란, 말이라는 알맹이에 입히는 '옷'이자, 나만의 고유한 '거푸집'인 거죠.


왜 제가 오늘 말투에 대한 개념을 찾아보고 이렇게 정리하고 있냐면요....

말투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서예요.

이제까지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제 말투에 대해서 깨닫고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저희 부모님은 경상북도에서 서울로 정착한 분들로, 저희 형제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늘 사투리를 들으며 자랐어요. 제가 바다 건너 여기에 와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인 남편에게 끌린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구수한 말투에서 다정함과 향수를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문제는 저희 아이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그 구수한 말투가 자주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아빠의 커다란 목소리와 명령조의 말투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엄마인 저도 아이들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나 조언이 말투로 인해 아이들의 오해와 분노를 사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아이들과의 대화는 주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합니다. 아이들은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의 경우 한국어로 해도 알아듣고, 몰라도 상황을 봐서 대충 파악하는 일이 많은데요, 어려운 어휘가 필요한 대화는 주로 일본어로 하고 있어요. 혼을 내거나 주의를 줄 땐 무의식적으로 한국어로 따다다다.... 따발총(이런 단어 아직 쓰나요?) 쏘듯이 하곤 했어요. 왜냐하면, 일본어는 우리 아이들이 저희보다 더 잘하니까 섣불리 설교했다가는 심각한 상황에 제 틀린 일본어로 인해 킥킥대거나 콧방귀로 처리되기 일쑤니까요.

그런데 이게 문제였어요. 아이들에게 충분한 한국어 어휘가 없으니 알만한 한국어로 대응해야 했고, 제가 대화하는 상대는 남편밖에 없다 보니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경상도 특유의 에너지에 익숙해져서 아이들을 자분자분 이해시키기보다 쥐어박듯이 꽉꽉 눌러 담은 말투로 밀어붙이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부부의 대화도 내용은 다정해도, 단답식의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였던 것 같아요. 의식조차 해 본 적 없었지만요. 아마 어릴 땐 어린이집에서 나긋나긋한 일본어에 하루 종일 지내다 온 아이들이 엄마아빠의 말투만을 듣고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창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은 요즘 목소리가 큰 아빠가 길에서 말을 걸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가요.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무슨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방으로 피할 궁리를 합니다. 대화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엄마와 아빠의 말투가 아이들에게 지레 겁을 먹게 만든 이유가 된 것 같아 반성해 봅니다.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담긴 상태와 그릇에 따라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하잖아요. 말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무리 애정이 담뿍 담긴 말이라도 그 말투가 거칠고 지시적이고 명령조라면 우린 과연 그 말에 애정을 느끼며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한탄하고 사춘기 탓을 하기 전에, 전 제 말투라는 그릇에, 옷에 과연 정갈하고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어 졌습니다.


당신의 말투는, 지금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