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는 사람들

느긋함과 냉혹함 사이에서

by 혜준

서울에서 살았을 땐,

쭈뼛거리며 겨우 잡아 놓은 택시를 민첩한 아주머니에게 빼앗기는 건 물론이요,

옷가게에 가선 늘 나보다 늦게 온 목소리 큰 손님에게 점원 언니의 서비스를 빼앗기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을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굼뜨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이랬던 내가 도쿄에서는

택시는 줄을 서 있다가 차례가 오면 문이 저절로 열릴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기본 매너요, 가게에서는 계산대가 어디가 빠른 지 기웃거릴 필요 없이 먼저 온 손님을

알아서 챙겨 서비스해 주는 친절함에 엄마의 핀잔을 추억할 마음의 여유까지 생긴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맛집에서 줄을 선다거나 예약 문화가 정착이 되어 있겠지만

20여 년 전 내가 처음에 일본에 와서 가장 놀란 문화적 충격 중 하나가 줄 서기 문화였다.

우리나라도 역시 질서를 중시하는 사회지만, 당시 일본에서 본 줄 서기는 한층 더 기발하고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화장실 앞에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각각의 화장실 문 앞에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는 방식이었는데

일본은 입구에서 한 줄로 기다렸다가 비는 칸이 생기면 순서대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운'에 따라 기다림의 길이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때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공평하게 느껴졌다(언젠가부터 우리나라도 이렇게 줄을 서는 걸 보고 기뻤다).


그리고 가게의 경우, 만약 손님이 없어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될 때에도 들어가서 내 맘대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기보다는 점원이 와서 안내를 해 줄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이

이곳의 매너이다(물론 홀서빙(?)이 없는 스타벅스나 맥도널드는 예외).

물론 맘에 들지 않는 자리를 안내받았을 때는 공손히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요구해도

괜찮지만 여기 사람들은 웬만하면 점원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앉는다.

나 같은 굼벵이에게는 이런 느긋하고 얌전한 줄 서기 문화가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러한 줄 서기 문화의 반전에 한 번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침 10시에 오픈하는 레스토랑에 아들 친구 엄마들과 만나기로 했을 때의 일이다.

오픈 시간에 맞춰 입장을 하려 하는데 친구 엄마 중 하나가 갑자기 눈을 치켜세우며

큰소리는 아니지만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우리들 앞에 끼어들려고 하는 할머니 그룹을

혼내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들은 자기들은 우리보다 먼저 왔지만 다리가 아파서 저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끼어드는 게 아니고 당신들의 순서라고 했다.

이 말에 친구 엄마뿐만이 아니라 우리 앞에 서 있던 젊은 아빠가 갑자기 뒤를 돌아 합세를 하며

할머니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당장 뒤로 가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난 얼음이 되었다.

먼저, 연장자인 할머니들에게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을 하는 것도 놀랍거니와, 레스토랑은 충분히

넓고 아직 좌석이 많아 양보해도 별 상관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젊은 아빠는 할머니와 우리보다 앞에 서 있으니 할머니가 끼어든다고 해도 본인은 그리

상관이 없었다.

뭐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그것도 다리가 아픈 할머니들한테?

결국 할머니들은 더 말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한 번 마주 본 뒤, 고개를 숙이며 줄 맨 뒤로

이동했다.

난 내가 무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할머니들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친구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에게 상냥한 눈웃음을 보냈고 다른 엄마들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난 그날 처음으로, 이 얌전하고 질서 정연해 보이는 사회가 결코 느슨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


일본의 느긋하고 얌전해 보이는 줄 서기 문화의 이면에는 이렇게 가차 없는 냉혹함이 깔려 있었다.

여기서는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하는 만큼, 그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에는

응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에게 폐 끼지치 마라(迷惑かけるな)"는 일본 엄마들의 당부는, 아이를 향한 다정한 훈육이기

이전에 낙오되거나 응징당하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 적응하라는 서글픈 생존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