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같은 팀
2월을 끝으로 딸아이의 학원 생활은 막을 내리게 된다. 4월부터 고2가 되는데 말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조금 먼 학원을 다녔던 딸아이는 지난달부터 이젠 혼자 할 수 있다며, 학원비가 아깝다며 학원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실은, 작년 가을부터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으나 이제까지 열심히 다닌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고2가 되는 지금 시점이 학원과 연계해서 가장 스피드를 올려야 할 때라 나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기도 하고, 딸아이를 살살 달래 가기도 하며 지금까지 버텼다.
그러나 지난주 학원에 간다고 해 놓고 맥도널드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것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버틸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딸은 내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자신은 학원을 갔으며, 그 증거라면서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며, 자신을 못 믿는 거냐며 펄펄 뛰기까지 했었다. 난 학원에 가지 않은 것보다 이렇게까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딸이 더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말만은 하지 말자고 하던 평상시의 내 훈육이 보기 좋게 배신당한 느낌에 딸이 괘씸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딸아이와 이야기 한 끝에 결국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딸아이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딸아이의 거짓말과 성적이었고, 잠들기 전까지 불안해하고 있는 나에 대한 자책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아침에 딸은 한 마디 상의 없이 대입 선택 과목도 정해 놓고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선택 과목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건만 제대로 알아보고 결정한 게 아니라 학습량과 범위가 적어 공부하기가 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선택했다는 게 한심했다.
하루 종일 생각했다. 앞으로 학원도 안 가고 공부도 설렁설렁 요령이나 부릴 딸을 어떻게 봐 내야 할지를.
이성적으로는 딸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이며, 실패나 좌절을 대신 막아 주거나 해결해 주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거리를 지켜 온 지난 3년의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점이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어쩌면 엄마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은 별개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난 강박처럼 아이와 나를 각자 인생의 개인 플레이어로 생각해서, 내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거나 결정 내리는 것을 반칙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잘못된 플레이를 하면 너무나 불안해하면서도, 난 절대 반칙만은 해서는 안되니까 손도 못 대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맸던 것 같다.
이렇듯 딸과 나를 별개라고 생각하는 이상, 난 영원히 엄마로서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언젠가 혼자 스스로 극복해 내리라고 하는 절대적 믿음이 나에겐 너무 어렵고 버겁다.
물론 엄마와 아이가 정신적으로 동체(同体)가 되어 서로의 욕망을 투영하고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이는 정신적으로는 절대로 독립된 개체가 될 수 없다는 전제가 인정된다면 난 덜 불안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이를, 육체적으로는 개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하나의 팀을 이루는 관계로 생각하는 건 무리일까?
나는 이제껏 아이에게 팀원으로서 해 줄 수 있는 도움과 조언도, 혹시「과보호」라는 반칙이 되지 않을까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이가 곤란에 처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가락만 빼물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실패와 좌절을 한 팀원으로서 바라보게 되면 좀 더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우리는 한 팀이므로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를 격려해 주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 내 불안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성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싹트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내가 딸아이와 한 팀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가 조금 분명해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물론 내가 아이의 플레이를 대신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만 있거나 목이 터져라 응원만 하고 있겠다는 것도 아니다.
딸아이의 성장과 자립이라는 시합에,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울고 웃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는 팀원으로서의 엄마가 되고 싶다.
학원에 대한 시행착오로 이제야 나는 비로소 딸아이의 곁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어떤 실패와 좌절에도 겁내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딸과 함께 신나게 이 시합을 뛰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