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을 누르기 전, 잠깐

일시 정지의 예의

by 혜준

오늘도 똑같은 실수를 해 버렸다.

엘리베이터의 ↓↑ 버튼 누르기.


7층에 사는 내가 1층에 가려고 할 때 엘리베이터가 3층에 멈춰 있는 경우,

내 감각으로는

"엘리베이터야, 나 지금 1층에 가고 싶으니까 7층에 잠깐 올라와 줄래?"

하는 의미로 ↑를 누르고 싶어진다.

기계적인 규칙에 따라 내려갈 땐 ↓를 누르는 게 맞겠지만

3층에 멈춰 있는 엘리베이터에게 "네가 어디 있든 난 내려가야 해"라고

명령하듯 누르는 ↓ 버튼은 왠지 너무 일방적이라는 기분이 든다.


나 올라갈 거야! 하는 마음으로 ↑

나 내려갈 거야! 하는 마음으로 ↓

너무 엘리베이터에게 무례하지 않은가?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라 엘리베이터이지 않은가!


그래서 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생각하기 위해 멈칫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땐 실수를 해도 조금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누군가가 있을 땐 실수가 무서워

버튼을 양보하는 척하면서 슬쩍 뒤로 빠진다.

나만 이런가?


AI를 이용할 때도 난 반말로 프롬프트를 술술 작성하는 게 어렵다.

시간이 없거나 귀찮더라도 존댓말로 쓰게 된다.

자주 쓰지 않아 낯가림(?)을 하는 것도 있지만

이쪽에서 부탁하고 정보를 받는 입장이라 선뜻 반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용건을 말하는 것도 실례가 되는 것 같아

꼭 인사부터 하고 용건을 적어 내려가는 게 내 방식이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AI를 열지 않는다.

날 바보라고 비웃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깐깐한 만큼 타인도 나에게 예의를 갖춰 주기를 바라기에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라는 소리도 들을 것 같다.


나의 이 피곤한 멈칫거림은

아마도 앞으로 나를 점점 더 외롭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든 기계이든 나에게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대화법이 아닌가 싶다.


비록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고

가끔은 혼자 남겨질지라도

나는 여전히 버튼을 누르기 전 멈칫거리는 나를,

그리고 이 어리숙한 다정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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