濡れ落ち葉(젖은 낙엽) 아닌, 이끼쯤 되는 夫婦

이혼도 졸혼도 아닌, 우리 식의 거리

by 혜준

슬슬 아이들 교과서가 배송되어 오는 시기라서 아이들 방 책장 정리를 했다.

하는 김에 책상이랑 침대 배치도 바꾸느라 하루 종일 혼자 낑낑댔다.

매일 조금씩 하면 될 걸 난 왜 이렇게 몰아서 난리를 치는지...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자기 바로 직전에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서 좀 끄적이다 자 볼까 한다.


젖은 낙엽, 황혼이혼, 졸혼....

이 말들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표현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젖은 낙엽(濡れ落ち葉: ぬれおちば [nureochiba])은 1980년대 후반 수필가 아사노 히사코(浅野久子)씨가 만든 말이다.

비에 젖은 낙엽이 바닥에 착 달라붙어 아무리 쓸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퇴직 후 재취업이나 취미 생활 없이 집에만 머물면서 아내에게만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남편을 비유하는데, 당시 일본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남편은 아직 퇴직은 하지 않았지만, 방학 중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붙어 있다. 너무 좋아서 같이 있다기보다는 둘 다 게으른 관계로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다 보니 늘 거실의 이쪽 구석과 저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한다. 식사 때가 되면 같이 밥 먹고 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게 일상이다.

집에도 자기 공간을 하나 만들어 놓았고, 직장에도 자기 방이 있건만...

남편은 바닥에 달라붙은 젖은 낙엽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섬에 붙은 이끼에 가깝다고 할까.

삼식(三食)이... 이끼쯤?


남편은 대화가 참 어려운 사람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참 재미나게(?)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의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다. 난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게 더 편한 사람이라서, 남편과 있으면 서로 죽이 잘 맞는다.

그래도 이따금 우리 둘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말을 꺼내면, 바로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여자와 남자란 말이야... 하고 강의가 시작돼서 머리가 아파오긴 한다.

게다가 갑자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면, 내가 다른 일에 집중을 하고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 큰 목소리로 말을 건다. 예전엔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듣고 장단도 치고 질문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가만히 들어 보니, 언제부턴가 이 사람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말하면서 머릿속의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본인은 부정하고 있으나).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벽이라도 거기다 대고 자기 말을 할 사람이라는 걸 안 순간, 내 듣는 태도도 불성실해졌다.

내가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열심히 듣지만, 별로 관심 없는 것에 대해서는 흠흠.... 하고 그의 말을 배경음악 삼아 조용히 딴생각에 잠겨도 남편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황혼이혼을 하게 될까... 하면 그것도 우린 귀찮아서 안 할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혼이혼이라고 하지만, 원어로는 熟年離婚(じゅくねんりこん [jukunenrikon])이다.

자녀들이 다 성장하고 남편이 은퇴한 후, 노년에 접어든 부부가 갈라서는 것을 말하는데, 2005년 일본 TV아사히에서 방영된 드라마 "숙년이혼(熟年離婚)"이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일반 명사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2007년 일본의 "연금분할제도"가 시행되면서 이혼할 때, 남편의 연금을 아내가 나누어 받을 수 있게 되자, 참고 살던 아내들이 결단을 내리는 경우가 급증했다고도 한다.

사실, 처음에 황혼이혼에 대해 듣고 일본 여자들은 독하고 치사하다고 생각했었다. 싫으면 당장 헤어지고 말지 몇 푼도 안 되는 연금 받겠다고 한 지붕 아래에서 참고 산다는 게 치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싫으면서도 그걸 아무 티도 안 내고 있다가 남편이 정년퇴직함과 동시에 탁탁 뒤끝 없이 깨끗하게(きれいさっぱり [kireisappari])정리해서 바이바이할 수 있다는 게 무섭기조차 했다.

하지만, 그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고, 당시 일본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지금도 공부가 부족해 잘은 모르지만, 그게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황혼이혼이라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우리 부부가 황혼이혼을 게을러서 못한다면 졸혼은 할 수 있을까.

卒婚(そつこん [sotsukon])은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씨가 저서 "졸혼을 권함(卒婚の ススメ [susum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부부가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형태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니 이제는 부부라는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차이를 찾자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면, 일본의 베이비 부머세대를 말하는 단카이 세대*(団塊世代 [dankaisedai])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사회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대한 진흙 덩어리(단카이)처럼 똘똘 뭉쳐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이제야 비로소 개인의 삶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평생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오다가 "이젠 나도 내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선언하기 시작한 아내들의 수도 급증했다.

이혼을 하면 연금이나 보험, 상속 등 복잡한 경제적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으나, 졸혼은 이를 유지하면서 자유만 얻는 보다 실리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사회 특유의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함(迷惑:めいわく [meiwaku])"과 "가족의 틀은 깨고 싶지 않음"이 결합되어, 겉으로는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졸혼이 매력적인 대안이 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대학만 졸업해도 거의 60,70대가 되므로 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을 것도 같다. 지금도 붙어 있긴 해도 서로의 독립성은 인정하는 편이라 그리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혼자 있으면 소홀해지기 쉬운 식사나 청소의 분담, 무엇보다 여기서 서로 친구가 별로 없어서인지 부부보다는 동지나 친구 같은 느낌으로 산다.

생각해 보니 이거 단순히 룸셰어하는 사람들 아닌가.

만약 지금 서로에게 친한 친구나 모임이 많다면, 혹은 처음부터 엄청 끈끈하고 정열적인 결혼 생활을 했던 부부였다가 세월이 흘러 서로에게 섭섭한 상황이 되었다면 졸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굳이 졸혼을 하나 안 하나 이미 서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도 내가 이 맹숭맹숭한 남편과의 생활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서 항상 내 편(味方:みかた [mikata])이 되어 준다는 점이다. 남편은 내가 누군가의 흉을 보는(陰口を叩く:かげぐちをたたく [kageguchiwo tataku])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이 사람은 항상 상대방의 편을 들어(肩を持つ:かたをもつ [katawo motsu])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곤 해서 내 화를 더 돋우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 정말 중요한 순간, 내가 정말 힘들 때는 말없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존재가 된다는 게 분하기도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말과 행동을 하거나 보여도 전혀 조심스럽지 않은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사람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아까는 몸이 피곤해서 말이 거칠게 나갔을까.

사실, 요즘 내가 별 것도 아닌 걸로 너무 틱틱거린 것 같아 미안하긴 하다.

나의 말투가 거슬렸던 남편이 옐로카드를 내 보였고 난 거기에 더 화가 나서 레드카드를 던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쌓아두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때그때 불만을 이야기하고 풀어 버리면 뒤끝도 없어서 그것도 죽이 잘 맞는 것도 같다.

남편은 아까 잔다고 방에 들어갔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젠 내가 말이 좀 심했어. 미안해."

라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안 봐도 알긴 안다.

아마도 남편은 못 들은 척할 것이고, 그런 척하는 걸 나도 모르는 척하면서

날씨 타령이나 하며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또 시작되겠지....


이혼도 졸혼도 아닌, 그저 각자의 섬에 붙어 서로의 존재를 묵묵히 증명하는 이끼 같은 우리.

어쩌면 이것이, 서로 젖은 낙엽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 부부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団塊世代: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전후 경제 성장을 이끈 세대로, 주로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단카이(団塊)’는 ‘덩어리’라는 뜻으로, 이 시기에 출생률이 급격히 늘어나 인구가 한 덩어리처럼 두드러졌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고도 경제 성장기를 이끌었고, 은퇴 이후 사회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