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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당한 날, 나는 무엇을 배웠나

철학을 지킨 장인, 상업적 감각을 발휘한 사업가 사이에서

by 지금여기

몇 달 전, 나는 마음에 드는 원목 식탁을 구입했다. 질 좋은 원목에 단정한 디자인, 무엇보다 담긴 철학이 마음을 끌었다. 사용할수록 만족감이 커서 다른 가구도 그곳에 의뢰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함께할 가구라면 같은 뿌리를 가진 물건으로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디자인을 조금 바꾸어 제작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이런 디자인, 이런 소재는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는데, 대표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이전에 다른 제품을 의뢰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읽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순간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걸까?’ 하는 불안이 스쳤다.

그리고 이어진 단호한 대답.
“죄송하지만 그건 해드릴 수 없습니다.”





대표님의 말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한 사업가가 같은 디자인을 공동구매 형식으로 의뢰했지만, 그는 거절했다고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대량 생산으로 넘어가는 순간, 한국의 목공소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일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대형 공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는 눈앞의 이익보다 철학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거절이 오히려 멋져 보였다. 쉽게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 그러나 소비자인 나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는 존중의 태도.






그런데 같은 장면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그가 거절했던 사업가는 지금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며 브랜드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다른 목공소에 의뢰해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했고, 상업적 감각을 발휘해 시장을 키워냈다. 소비자인 나 역시 결국은 그곳에서 내가 원하던 디자인과 소재의 제품을 합리적인 금액으로 구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철학을 지키면서도, 현실과 조율하는 또 다른 길은 없는 걸까. 그날의 거절은 단순히 물건을 사지 못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멈춰 세운 귀한 경험이었다. 그날의 경험은 일상 속에서 자꾸 떠올랐고, 결국 글로 정리해보고 싶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쓰다 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답은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을. 대표님은 한국 목공업에 대한 애정과 장인정신을 지켰고, 사업가는 상업적 감각을 발휘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나누었다.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였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분명히 아는 것. 이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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