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를 멈추니, 관계가 편해졌다

나는 배려했는데, 왜 미안해졌을까

by 지금여기

오늘 아침, 남편의 출근길을 돕다가 잠깐 감정이 상했다. 평소라면 뽀뽀도 하고 안아주고 행복한 얼굴로 배웅하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먼저 챙긴 게 오히려 남편의 리듬을 깬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나눴다. 그제야 보였다. 내 배려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






나는 배려했는데, 왜 미안해졌을까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일상이다.

나는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다. 상대가 불편해 보이면 대신 처리해 주고, 상대가 바빠 보이면 먼저 결정하고, 상대가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행동한다. 대부분은 잘 통한다. 상대는 고마워하고, 나도 뿌듯하다. 하지만 가끔, 이 배려가 오작동할 때가 있다. 과발휘되는 순간, 문제가 터진다.





배려가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

배려는 보통 좋은 마음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묻지 않고 먼저 움직인다. 상대가 불편해 보이면 대신 처리해 주고, 상대가 바빠 보이면 먼저 결정하고, 상대가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행동한다. 그 순간의 선택은 분명 배려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어떤 배려는, 행동이 끝난 뒤 고마움이 아니라 설명을 요구받는 순간이 온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의도는 이랬어."

"그렇게 보일 줄 몰랐어."






이때 우리는 이상한 위치에 서게 된다. 배려한 사람인데, 어느새 변명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원래 배려는 설명이 필요 없는 감정이다. 행동이 곧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배려는 상대와 같은 맥락을 공유하지 않으면 배려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런 배려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상황을 추정해서 나온 행동

상대의 선택을 대신해 버린 행동

"이 사람이 이럴 것 같아서"라는 판단이 포함된 행동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남편이 "오늘 뭐 먹을까?" 물어볼 때마다 아내가 고민하는 게 보여서, 어느 날 퇴근길에 미리 치킨을 사 왔다.

"오늘은 네가 고민 안 해도 돼."

아내가 씁쓸하게 웃었다.

"고마운데... 나 오늘부터 식단 하려고 했거든."

남편은 당황했다. 아내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이 변명하고 있었다.

"아, 미안. 그냥 네가 매번 고민하는 것 같아서..."

그날 밤, 남편은 생각했다. 배려했는데, 왜 설명해야 했을까.

문제는 배려의 진심이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배려는 선물인데, 영수증을 요구받는 순간 거래가 된다

행동 뒤에 설명이 따라붙는 순간, 배려는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해명해야 할 선택이 된다. 배려 하나에 행동과 말, 그리고 감정까지 함께 소모된다. 행동하고, 오해받고, 맥락을 설명하고, 감정을 다시 회수해야 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다음에는 배려를 줄이거나, 아예 마음을 닫거나. 그리고 어느 쪽이든 관계는 이전보다 가벼워진다.







배려는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배려를 줄이면 사람이 차가워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소모되는 배려를 줄여야, 배려를 오래 쓸 수 있다. 배려는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배려를 대하는 기준을 조금 바꿨다.







그래서, 배려를 이렇게 쓰기로 했다

설명해야 하는 배려는, 자동으로 하지 않는다. 이건 배려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배려를 오래 하기 위한 선택이다. 처음엔 묻는 게 이상했다. 진짜 배려는 말없이 알아서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거 사 올까?"

"저녁 뭐 먹고 싶어?"

"이거 내가 해줄까?"

같은 질문이 오히려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물어본 뒤에 들은 "그래, 고마워"라는 대답이, 침묵 속의 감사보다 훨씬 가벼웠다. 자동으로 나가던 배려를 '확인 후 선택'으로 바꾼다. 대신 결정하지 않고, 먼저 움직이지 않고, 묻고 나서 행동한다.

"이렇게 해줄까?"

"이게 도움이 될까?"

"원하는 방식이 있어?"

이 한 문장이 들어가는 순간, 배려는 오해가 아니라 합의가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배려는 다시, 배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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