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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여기 Jul 02. 2024

남편이랑 싸우고 싶다

17년 차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최근 2~3년간 남편이랑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거다.

우리 부부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마음 상태가 되었을까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 등교 후 바로 헬스장에 가는 루틴이 있다. 가자마자 스트레칭을 10분 정도하고 유산소를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남편의 톡이 왔다.







“오일필터 어디 있어?”






과거에 구매하고 창고에 보관 중인 부품에 대해 질문하는 건지 아니면 이번에 구매한 건지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 또한 자동차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내가 알 턱이 있나. 톡으로 설명하려니 운동 중에 번거로워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받고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도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시지에서 이미 난 짜증이 났다. 왜 전화를 안받아?




다시 톡을 보내고 1~2분 내로 답이 오겠거니 생각하며 스트레칭존에서 남편의 답을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나는 조금 더 스트레칭을 하며 기다렸다. 스트레칭을 하는 내내 나는 내 몸에 집중하지 못했다. 남편은 눈앞에 있는 물건을 두고도 못 찾는 일이 많은데 (진짜 신기한 점) 또 그러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지금쯤 나가야 할 텐데 아직 집인가?”






통화는 안되고 이대로 유산소 운동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못 볼 텐데… 운동하면서도 신경이 계속 쏠려있을게 뻔해서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남편의 전화가 왔는데…?

슬슬 심술이 났다.






“아니, 왜 바로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말이야. 나 자기 기다리느라 아직도 스트레칭존이야~”

이 시간이면 유산소 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 때문에 못하고 있었잖아. “

약간의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심드렁한 남편의 반응

“그거 오늘 필요한 거 아니야. 내일 필요한 물건인데 물어봤지. 운동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전화를 끊고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뭐야. 당장 오늘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내가 운동하는 시간인걸 뻔히 알면서 물어본 거야?”

“나는 최대한 오빠를 돕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반응이 왜 이래? “

“필요한 거면 하루 전날 미리 찾아두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졌고 따라오는 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진짜 어이가 없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다시 전화 걸기) 오빠 지금 날 무시해? 생각해 줘도 그래!?”

라고 하면 정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아침을 더 꿉꿉하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거짓말 같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일단 웃음이 픽 나왔다.

'어쩜, 이렇게 유치해도 된다고?'

‘왜 나는 나의 스케줄을 행하지 못했는가?’

‘나는 진짜 남편 때문에 유산소를 하지 못했는가?‘

‘나는 왜 남편을 기다렸는가.’





과거에는 남편의 심드렁하다 못해 시크한 반응에 상처를 받았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남편의 말이 맞다.





1. 남편은 내가 운동 중이거나 말거나 관심 없음. 그냥 필요하니까 궁금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때나 질문한 것

2.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는지 남편은 모름. 신경 끄고 내 할 일 하면 되는 건데 혼자 오버했음.

3. 진짜 급하고 중요한 거였으면 남편이 이미 찾아 둠. 그런데 나는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함.





이 글을 쓰면서 정확히 내가 부재중전화를 몇 분 기다렸는지 확인해 보고 화들짝 놀랐다.

9시 12분 전화(부재중)

9시 18분 통화 완료


부재중 전화

전화를 끊고 약 5분 동안 소설을 쓰고 있었던 거다.






이런 패턴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과거에 남편과 정말 미친 듯이 싸웠을 때 습관적으로 했던 일이니까 으르렁거리고, 또 으르렁거리고 씩씩거리고, 그야말로 쌈닭이 따로 없었다.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운동을 끝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나의 행동에 대한 어떤 비난도 없이 다정하게 내 전화를 받아줬다.





“어~ 운동 끝났어? 나는 출근하고 있어.”

“여보, 이제 가는 거야? 비 많이 내리는데 운전 조심해~ 사랑해”

한 시간 전만 해도 툴툴거리던 내 목소리는 사라지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편을 둔 아내모드로 대화를 나눴다.






부부가 안 싸우고 산다는 말을 들으면 에이 거짓말!!이라는 반응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는데

요즘의 우리를 생각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포인트는 “싸움이 없어요. “가 아니다.

부부 갈등, 싸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기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부부싸움이 일어날 때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여기에 집중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몰아봐도 결국에는 싸움이 안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 진짜 싸우고 싶다. 우리 좀 싸울까?”

“미친 듯이 싸웠던 그때가 좀 그립긴 하네.”

“이리 와~ 싸우자! 덤벼 봐!”





연애 5년, 결혼 12년 차 합 17년차 우리. 이제는 이런 대화를 우스갯소리로 할 수 있다니…!

앞으로의 인생이 더 기대된다.




세화해변에서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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