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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여기 Dec 11. 2021

그 집 부부의 싸움

초보 명상가 부부

코로나 이후, 2년째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오래간만에 외출했다.

시간을 보니 얼추 내가 아이들과 놀이터 투어를 끝낼 쯤에 돌아 올 예정이었다.

아이들 목욕은 남편에게 패스하겠노라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깜깜한 집 안


분명히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남편이 아직 집에 없었다.

현관 입구에서부터 옷을 벗으며 들어온 아이들이 아빠를 찾았다.

"아빠 어디 가셨어요?"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싶어서 핸드폰을 꺼냈다.

몇 분 전에 남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갑자기 치킨 사주신대서 먹고 갈게"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화가 났다.

코로나 때문에 평소 외식은커녕 외출도 잘 안 하는 우리인데 너무 쌩둥 맞게 치킨을 먹으러 갔다니....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다가 오늘은 확진자 7천 명이 나온 날.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치킨집 매장 음악소리가 들린다.

"아니, 왜 갑자기 치킨이야? 애들이 아빠 어디 있냐고 찾아"

"어~ 치킨 사주셔서 금방 먹고 갈게~, 우리 공주들 좋아하는 에그타르트 사가야겠네."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무슨 에그타르트야, 오늘 아침에도 먹었어. 필요 없어."

"오늘 확진자가 몇 명인 줄 알아? 이 시국에 꼭 치킨을 먹어야 해?"

"이른 시간이라 지금 매장에 우리 둘 밖에 없어. 얼른 먹고 갈게~"


"뚝"


화가 난 나는 전화기를 말없이 끊어버렸다.


"보나 마나 치킨 사준다는 말에 홀딱 넘어가서 따라갔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문자로 폭탄을 날렸다. 연속으로 4~5개 다다다 보냈는데 역시나 남편은 확인하지 않았다. 흥, 치킨이 그렇게 좋나? 참고로 우리 집 남편은 치킨에 진심인 사람이다.


아이들을 목욕탕에 넣고 잠시 한숨 돌리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좀 오버인데? 이미 주문까지 했을 텐데 나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어쩌려고 화를 낸 거야?"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데?"


'아,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난거지?'

가만히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남편이 가끔씩 만나는 그 형님이라는 사람이 조금 신경 쓰인다.

친목도모를 위한 만남도 아니고 남편의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다. 그분이 남편을 챙기는 것을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한 번씩 부딪힐 때가 있었다.

주말에 남편을 불러내거나 밤늦은 시간까지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일, 장시간 전화 통화하는 일

뭐 이런 게 좀 신경 쓰인다.

(나 질투 중인가?)

아이들이 아빠 기다린다는 것도 사실 핑계다.

남편이 집에 있었으면 내가 목욕 안 시켜도 되니까. 그 시간에 한숨 돌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게 짜증 났던 거다.

(사실 목욕도 애들이 대부분 알아서 하기 때문에 내 손이 크게 갈 일도 없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보니 남편에게 짜증 낸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따가 얼굴은 어떻게 보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못 본척할까?'








아이들 목욕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차리고 있는데 남편이 왔다.

따끈한 치킨이 손에 들려있었다.


아이들은 치킨을 보더니 너무 좋아했다.

남편은 나를 보며 씩 웃음을 보인다.


"우리 자기 흘려보내기 잘했니? 이거 먹어~ 형님이 사주셨어."

(치킨 냄새가 끝내주게 좋았다!)

나도 모르게 방긋 웃어버렸다.


남편과 나는 초보 명상가이다. 서로 명상에 대해 공부한 것, 느낀점을 자주 공유한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문장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어떤 감정이든 그건 내가 아니고 그 감정이 잠깐 왔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감정을 들여다보기, 흘려보내기, 바라보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남편은 전화해서 다짜고짜 화내는 나를 보고 같이 화내지 않고 들여다본 거다. 그래서 나에게 폭탄 전화를 받고도 아주 편안하게 치킨을 뜯고 왔다.

나 역시 남편에게 폭탄을 던진 뒤 혼자 있는 시간에 가만히 그 감정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화가 났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평온하게 남편의 귀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오빠 사실은 말이야 내가 생각해도 아까 전에 내가 너무 웃겼어. 좀 민망하네. 미안~"

"그래, 나는 자기가 다시 생리 시작한 줄 알았어. 이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닌데 말이야. "

(나는 생리기간 때 짜증 대폭발 잔치를 벌인다. 나만 그런가?)

남편은 나에게 안심하라는 듯 텅텅 빈 매장 사진을 보여줬다.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내가 살짝 진 느낌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5년간 연애를 하고 4년간의 신혼부부 기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싸움을 했다.

그때는 서로가 감정 다루는 방법에 대해 잘 몰랐다.

나도 남편도 감정에 휘둘려서 서로에게 뾰족한 가시를 날리기 바빴다.

그랬던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며 명상을 시작했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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