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뻔한 그날의 기억
10년 전 겨울, 어느 주말
날이 추워서 커튼도 꽁꽁 닫고 아침도 거르며 남편과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아이 없는 신혼부부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상.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주말 특식으로 피자를 먹기로 했다.
요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배달되는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배달음식은 치킨, 피자, 중국집이 전부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피자 주문을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배달이 1시간 정도 걸렸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남편 대신 내가 얼른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달기사님이 다짜고짜 나에게 화를 냈다.
“배달 오다가 넘어졌잖아요.”
“이런 날 주문하지 마세요! 쾅~”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배달기사님은 엘베를 타고 내려가셨다. 너무 놀란 나는 창 밖을 내다봤다. 아….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이제 막 쌓이는 눈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런 날씨인 줄 알았으면 주문 안 했을 텐데… 아니 그럼 처음부터 배달 안된다고 하지.”
“에휴 아르바이트생이 뭔 힘이 있었을까?”
“나도 다음엔 조심해야겠다.”
“내가 여자라서 막 말한 걸까?”
그날 피자를 먹은 건지 걱정을 먹은 건지 기억이 안 난다. 눈 내리는 겨울,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면 그때의 일이 종종 생각난다. 그 뒤 오토바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입력되었다.
10년 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서 있었다. 이 동네에서 10년 동안 살며 가끔씩 지나가는 곳인데 꽤나 신경 쓰이는 곳이다. 교통량이 제법 많은 곳으로 신호등 없이 4차선 도로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중심상가라 배달 오토바이도 자주 지나가는 곳이다. 웬만하면 돌아서 가는데 그날따라 도로가 비어있길래 건너기로 했다.
그래도 불안한 나는 왼쪽 오른쪽, 저기 멀리까지 살핀 뒤 막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한 블록 위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전력 속도를 내며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나와 먼 거리였고 설마 여기까지 속도를 내겠어? 하는 마음으로 왼쪽에서 돌진하는 오토바이를 주시했다. 그런데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니 정확히 나와 부딪히는 방향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오토바이는 순식간에 횡단보도 가까이 왔고 속도를 줄여야 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재빨리 몸을 앞으로 움직이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았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가는 건 더 위험해 보였다. 그 순간 우리 아이들은 어떡해..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어어어어아아아악!!!
오토바이가 나를 아슬하게 비껴나갔다.
헬멧조차 쓰지 않았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그 와중에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비웃음과 욕설을 퍼부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내 몸 하나 온전하다는 것에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나는 매번 이 장소를 지날 때마다 안 좋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해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당기고 있었던 거다. 그 끌어당김의 힘으로 그날의 사건을 만들었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안도감을 느끼자 긴장이 풀렸다. 나는 그곳에서 펑펑 울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뒤 남편과 둘이서 차를 타고 근처에 지나갈 일이 있었다.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한 오토바이가 곡예운전을 하며 지나가다가 우리 앞에서 슬라이딩하는 모습을 봤다. 그 운전자 역시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더니 “그때 그놈 아냐?”라고 물었다. 정신이 없어서 기억할리는 없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그때의 안 좋은 감정이 올라와 증오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살 다니세요. 그리고 헬멧 착용도 꼭 하세요!”
나는 지난 10년간 오토바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요즘은 뭐든 배달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밤낮, 새벽에도 오토바이 소리는 끊임없이 들린다. 이제는 그들을 생각하며 사랑의 마음을 흘려보내려고 한다. 창 밖으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외친다. 우리 집으로 배달 오시는 기사님들은 특별히 더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