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이 나에게 준 힌트
주말농장 2년 차
우연히 씨를 뿌리다가 실수로 깻잎씨 한 봉지를 다 쏟아 버렸다.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두자니 아까워서 손으로 대충 주워 담아서 밭 전체에 고루 뿌렸다. 이때만 해도 살 애들은 살 것이고 뿌리내리지 못한 애들은 그냥 말라죽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깨가 자랐다. 깻잎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다. 비라도 한 번 내리고 나면 그야말로 폭풍 성장했는데... 어쩌다 보니 깻잎이 텃밭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초보 농사꾼이 가꾸기에는 밭이 큰 편이라 굳이 깻잎을 뽑아내지는 않았다. 한 번씩 다른 채소를 심을 일이 생기면 하나 둘 쓱 뽑아 버리면 그만이고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가을 농사를 준비하며 남편과 어떤 작물을 심을지 의논했다. 가을 농사 준비도 할 겸 정글을 이루고 있는 깻잎도 몇 개만 남겨두고 모두 뽑아버리기로 했다.
남편은 땡볕에 쭈그려 앉아서 호미로 잡초를 뽑고 나는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깻잎 뽑기에 나섰다. 깻잎은 내 키보다 훌쩍 자라 있었다. 그동안 많이 뽑아 봤고 비도 한 바탕 내렸으니 부드럽게 잘 뽑히리라. 깻잎 줄기 중간쯤을 잡고 한 팔로 잡아당겼다.
어어어...? 그런데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다시 자세를 고쳐서 두 손을 모아 잡아당겼는데 미동조차 없다. 손에 잡힌 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다보니 흡사 나무처럼 단단한 줄기가 땅에 박혀 있었다.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체중을 있는 힘껏 실어서 뽑았다.
그렇게 한 참을 뽑았는데 어찌나 힘이 들어가던지 팔과 어깨, 손바닥이 얼얼했다. 땀으로 샤워를 하며 겨우 텃밭의 빈 공간을 마련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아무 생각 없이 뿌린 씨가 나무가 되었네."
한참을 뽑다 보니 그 곳에는 깻잎 논쟁을 뛰어넘을 깻잎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1. 처음부터 나는 깻잎 씨를 뿌리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2. 어쩌다 보니 뿌려진 씨.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만을 제공했다. 대부분 장마철 비로 물 주기를 대신하고 굳이 뽑아내지는 않았다.
3. 텃밭에 갈 때마다 훌쩍 자란 깻잎을 수확해서 찜 쪄먹고 싸 먹고 끓여 먹는 재미를 느꼈다.
4. 깻잎 농사를 잘 지어서 깨까지 털어 먹겠다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밭에서 뽑아내지 않았다.
5. 그 사이 깻잎은 뿌리와 줄기가 단단히 자라 있었다. 내가 아무리 뽑아내려고 해도 뽑히지 않고 깻잎의 당당한 파워를 드러냈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매력. 먼 곳에서도 옥수수 다음으로 잘 보이는 작물이 되었다.
요즘 나는 내가 만드는 콘텐츠가 가진 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지도 못한 "깻잎"에서 얻게 되었고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우연히 깻잎 씨를 뿌리고 큰 기대 없이 살아왔듯이 내가 발신하는 콘텐츠 역시 깻잎 씨 뿌리는 마음으로 발신하겠습니다.
2. 너무 방치하지는 말고, 최소한 그 콘텐츠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하겠습니다.
3. 한 번씩 들여다보고 조금이라도 성장한 것에 대해 감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겠습니다.
4. 언젠가 나무가 되어 돌아올 때 당황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다.
5. 우연한 시작과 작은 노력의 힘을 믿겠습니다.
6. 의심 없이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작은 실수가 가져온 엄청난 결과, 씨앗의 힘"
* 최근에 뿌린 깻잎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