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나 | 엄마의 진짜 자기 돌봄이 시작되었다.
"엄마, 배고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매일 밤 9시가 되면 불을 끄고 30분 안에 잠이 든다. 일찍 잠드는 편이지만 잠이 많아서 학기 중에는 7시 30분, 피곤한 날은 8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방학이 되자 새벽기상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1, 초2 그녀들의 평균 기상시간은 새벽 6시. 일찍 일어나면 5시 30분인 경우도 많아서 30분만 더 자고 일어나라고 이불을 덮어줄 때가 많다. 어떤 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보통 겨울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데 그녀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나 보다. 그녀들은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나 뭐라나
(아니 평소에 시끄럽게 하는 애들은 너희 둘 뿐인데^^?)
나도 새벽기상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들 재우고 남편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 더 좋다. 이런 이유로 새벽기상을 멈춘 지 오래되다 보니 아이들 기상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 몹시 피곤한 일이 되었다. 아이들이 깬 소리가 들려도 30분이라도 더 자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바로 이 말 때문이다.
"엄마, 배고파요."
기상 후 식전 과일을 먹고 30분 내외로 밥을 먹는 것이 루틴이 되어 있다 보니 아이들이 아침밥을 찾는 시간이 확 당겨졌다. 과일이야 겨울이라서 실온에 귤이 늘 준비되어 있으니 알아서 찾아먹지만 밥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초등학생
"엄마, 배고파요."소리가 얼마나 강력한지!! 소중한 내 새끼가 다른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프다는데 어찌 침대 속에 있을 수 있을까. 잠에 취해있다가도 이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다.
"금방 차려줄게~"
세수도 못하고 냉장고를 열어 반쯤 뜬 눈으로 아침을 뚝딱 차려주면 두 녀석들은 정말 맛있게 아침을 먹는다. 이쯤이면 아이들도 아는 것 같다.
엄마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엄마, 배고파요."라는 걸 ㅎㅎ
얼른 차려주고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겠다고 침대로 들어가지만 잠이 홀라당 달아나서 잘 수가 없다. 남은 건 피곤함.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닌다.
어디 이 것뿐일까.
나는 평소 아이들의 배고파 소리에 화장실도 못 가고 손만 씻고 아이들 아침 차려줄 때가 많았다.
'내 새끼가 배가 고프다는데 지금 화장실이 문제냐. 국이라도 먼저 인덕션 위에 올려두고 화장실을 가자.'의 마음으로 말이다. 항상 이런 마인드로 아이들을 먼저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5시 반부터 아침밥을 찾는 두 녀석들에게 테스트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착한 엄마 테스트랄까?
생각해 보면 화장실을 먼저 가고 국을 데우느냐, 인덕션 on을 하고 화장실을 가느냐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을 챙기려고 노력했을까? 진짜 착한 엄마 콤플렉스에라도 빠진 걸까?
생각을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바로 밥을 차려주지 않는 엄마는 나쁜 엄마다?
아니 아니... 신체리듬상 새벽 5시 반에 배고픈 건 정말 드문 일!
'그래, 아이들도 소중하지만 나도 소중하지~ 나도 푹 자야 맑은 컨디션으로 아이들과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 나도 당당하게 나의 욕구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너희보다 늦게 잠들어서 늦어도 7시까지는 잠을 자야 몸이 개운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배고프면 과일 먹고 기다려 줘. 엄마는 7시 30분에 밥 차려줄 수 있어."
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나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 삶에 잘못된 방식으로 박혀있던 믿음을 콕콕 뽑아내며 알아차림 시간
일상 속 소소한 깨달음은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나의 경험들을 나누고 함께 하고 싶어서 자기 돌봄을 실천하는 단단한 나 소모임을 만들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원이 모여 두 달간 단단한 나를 만드는 여행길을 떠나기로 한 것
이곳에서 나누는 일상의 글이 참 좋다.
아직 스스로를 '단단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함께 실천하는 모임을 통해 우리 모두 단단한 몸과 마음을 가진 '단단한 나'가 될 거라는 걸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