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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제주도 대신, 우리 집에서 한달살기를 합니다.

이사 전, 우리집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여행자모드로 살아가기

by 지금여기

우리 가족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살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중 가장 자주 찾았던 곳은 제주도였다. 그곳에서의 한 달은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던 ‘당연한 것들’을 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의 설렘, 그곳에 머물며 하루하루를 더 깊이 바라보는 감각, 그리고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을 때의 아쉬움까지. 그 모든 감정이 여행의 일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 장기 여행을 계획할 수 없었다. 짐을 싸고 새로운 곳을 준비해야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전학 갈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던 중, 이사 날짜가 확정되고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딱 한 달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제주도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마지막 한 달을 ‘우리 집 한 달 살기’로 보내보면 어떨까?






이 집에서 살아온 시간은 어느덧 십 년을 넘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그해 겨울, 남편과 함께 깜깜한 밤에 집을 보러 다녔다. 계약을 마치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신문지를 깔고 거실 한가운데 앉아 가만히 둘러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텅 빈 공간을 살면서 하나씩 채워나갔고,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정성과 애착을 담아 함께 살아온 집이다. 둘이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매일 설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집에 하나둘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고, 아이 둘이 태어나고 자라며 우리 부부는 엄마, 아빠가 되었고 이제는 어느새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이 집에서 웃고, 울고, 다투고, 그러다 다시 껴안고 웃었던 날들이 이 집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참 묘하다. 살다 보면 익숙함에 묻혀버리고, 너무 오래 함께한 만큼 오히려 바라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제, 이 집과도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그저 짐을 싸고 떠나는 ‘이사’로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떠나기 전,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한 달 살기를 해보기로.

짐을 싸고, 정리를 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함께 정리하는 시간.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별의 연습이자, 고마움의 기록으로 채워가기로 했다.






한 달 살기가 주었던 감정들 -
그 안에는 늘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언젠가는 떠난다."
그 사실이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남은 한 달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랜 시간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이 집. 그리울 때면 한 편씩 꺼내 읽을 수 있도록 따뜻한 흔적을 기록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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