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2

아버지의 선택

by 늦은구름

오래된 사연이고 누가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시작한다. 사연이란 것이 인간의 서사라 한다면 이 세상 곳곳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집안 방구석에서부터

빌디의 사무실, 식당, 술집, 그리고 길거리와 산자락과 들판에 까지, 그뿐이랴 강과 바다에도 어딘가에 사연이 떠 다닐 것이다. 개인의 사연이란 티끌만큼 작은 것 이겠지만 그 하찮은 서사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늦은 봄날 박 씨는 김 씨의 타계 소식을 들려주었다. 나는 부서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기에 박 씨가 나에게 얘기를 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김 씨'라고 하기엔 좀 거북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나에게 큰 형님 정도로 나이 차이가 있었다. 나에겐 6.25 전쟁 때 납북되어 영영 소식을 모르고 있는 큰 형님이 있어서 나이로 따지면 내가 김 씨에게 '형님'이라고 해야 마땅했지만, 내 성미가 남에게 나이가 많다고 해서 형님이라는 호칭을 쉽게 쓰지 않는 터라 그냥 김 씨라고 한다.


내가 김 씨를 알게 된 것은 회사에 입사하고 몇 달 지난 다음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제약회사였는데 공장이 상당히 넓은 데다가 각 제품의 특성상 한 건물에서 여러 가지를 생산할 수 없으므로 건물마다 뚝뚝 떨어져 있었다. 공무 부라는 데가 다른 생산팀을 지원해주는 임무여서 맨날 여기저기 박혀있는 기계를 점검하고 정비 수리하는 게 우리 팀의 일이었다. 김 씨는 보일러맨이었고 기관실은 각 건물의 중앙쯤에 위치해 있었다.


오다가다 보일러실을 지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김 씨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는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남의 일에 나서는 일을 볼 수 없었다. 기관실에 고정되어 있는 근무형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서기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키는 컸고 얼굴은 좀 검은 편이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기관실 앞을 지나가노라면 그는 내게 "뭐가 그렇게 바빠?" 하며 말을 걸었다.

그럴 땐 "예, 한 건이 끝나서 돌아가는 길입니다."하고 대답하곤 했다.


보일러가 탈이 없이 잘 타고 있고 수증기 압력이 정상이면 할 일이 별로 없기에 심심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은 할 만해?"라며 내게 관심을 보여서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가끔 내게 자기의 과거 얘기를 해 주곤 했다. 고둥학교를 졸업 후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으로 일 하기도

했다고 하며, 몇 군데 직장을 옮겨 다녔고 미군 고위장교 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을 성실하게 하여 칭찬을 받은 적도 있는데, 특히 관사여서 가족이 함께 살았기에 그들의 풍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때로는 당황하기도 했다고 한다.


얘를 들면 부인의 복장이 우리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이어서 어느 때는 눈길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때도 있었다고 했다. 허연 허벅지를 다 드러내는 핫팬츠를 입을 적엔 아예 쳐다볼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낯선 모습을 자주 대하게 되니 자기도 결국엔 스스럼없이 마주하고 얘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우도 좋아서 불만이 없었는데, 어떤 계기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아 알 수가 없었고,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루는 점심시간이 되어 기관실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김 씨가 문밖에 앉아 있다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 인가 하고 가니 김 씨는 내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기관실은 관리부 2층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위치였다. 이 시간에 식당에 가는 길을 집중하여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원들이 대개 시간이 되기 전에 식당으로 가는 편이라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신경을 꽤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 씨의 말인즉 "관리부에서 체크하여 기록해 두는 걸로 알고 있어요. 괜히 거기에 걸리지 말고 여기서 있다가 가"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구태여 눈총 받아가며 일찍 갈 필요 없다고 여기고 김 씨의 말대로 보일러 실에서 김 씨의 얘기를 듣곤 했었다. 아들은 일류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부인은 멋있는 여인이며 인텔리라고 자랑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팔불출이라 하며 웃었다. 마누라 자랑하는 남자는 팔불출이란 별명이 붙는 게 보통이었던 시절이었다.

박 씨가 장례식에 다녀온 얘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멋있던 부인이 얼굴이 반쪽이 되었더라고 전했다.


박 씨의 말에 의하면 김 씨는 아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단다. 아들은 대학을 나와 큰 회사에 취직하여 착실하게 샐러리맨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며 자금이 필요하다고 아버지에게 요청했더란다. 김 씨는 아들에게 자세하게 물었고, 아들은 꼬치꼬치 묻는 아버지가 못 마땅했으나 아버지의 도움과 결단이 필요했던 만큼 나름대로 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사업계획 설명을 했다.

아버지는 뜨악해하면서도 아들이 자신 있게 하겠다고 하니 자금을 대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금액이 생각보다 큰 금액이라 선뜻 엣다 하고 내놓을 수가 없었다.


김 씨는 평생을 월급쟁이 생활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놓았던 것을 확실한 보장도 없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중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이 육 십 년대에 수립되어 힘차게 밀어붙이는 시기였다. 포항제철이 쇳물을 뽑아내기 시작한 지가 육 칠 년이 돼가는 시점으로 자동차, 조선공업이 활기를 띠며 커가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 큰 회사는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기에 부품을 생산하는 것은 중소기업에 , 더 작은 것은 하청을 받는 소기업에 일감을 주어야 원활하게 산업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김 씨의 아들은 부품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개업하면 일거리는 충분하게 끌어 올 수 있으며 각 방면의 산업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으니 물품의 대금은 걱정이 없다고 했다. 지금이 사업을 벌이기에 적기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하며 강하게 압박하였다.

김 씨는 한 편으로 이해는 하면서도 가진 돈을 아들의 사업에 전부 들이밀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사업을 너무 크게 벌인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하여 차츰 키워 나가야 하는 거지 시작부터 크게 하려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작게 시작했으나, 이렇게 해서는 어느 세월에 성공하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막연하였다. 이내 아들은 조급 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졸라 있는 돈을 전부 투자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몇 년 안에 성공할 수 있으며 부모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어코 부자간에 언성이 높아지며 언쟁이 되고 말았다. 부인은 남편을 두둔할 수도 없고 아들을 편들 수도 없어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던 차에 부자가 싸움을 하게 되니 자기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김 씨는 아들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노발대발하였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 공치사 그만하세요! 대학 안 보내 줬으면 내가 대학 다녔을 거예요. 남들 다 대학 보내는데 나만 특별한 겁니까? 예? 뭐예요? 이게 내가 재산 갔다가 날려 먹을 것도 아니고, 사업하여 갚아 드린다는데 뭐가 그리 억울하신 겁니까?" 하며 맞받아쳤다.


세대 간 갈등이었다. 신 구세대의 마찰은 산업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주변에 일상처럼 흔한 일이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으니 그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필연적 인지도 모른다.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던 시절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며칠을 두고 말 다툼 하다기 김 씨는 결심을 하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약방 여러 군데를 들러 수면제를 사 모아 가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을 찾았다. 산비탈에 약간 후미진 골짜기 양지를 찾아 수면제를 입에 다 털어 넣고는 반듯하게 누어 깊은 잠에 빠졌다. '내 인생이 여기 까지라면 깨끗이 끝내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무엇을 따지고 말고 가 없다. 아내에게는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여보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보살펴 준 것은 고마웠소. 이제 먼저 가기로 작정했으니 아들과 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내가 저 세상에서 살다 보면 당신을 만나는 날이 오겠지요. 사랑해요. 태어나서 이날까지 당신 한 사람만 사랑했어요. 항상 내 옆에 있어주어 얼마나 고맙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당신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에요.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되어 참으로 미안해요.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에요. 누굴 탓하겠소. 그럼 안녕!"

그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낮에는 햇살이 쓰다듬어 주고 밤에는 달빛이 푸르스름하게 비추어 주었다. 그의 얼굴은 달빛을 닮아갔다. 김 씨의 인생은 그렇게 조용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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