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병이의 미소
어느 날 퇴근길에 신갈 고속도로 굴다리 밑에서 성만이를 만났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그 아이를 성년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성만이 오래간만이다. 잘 있었어?" "네, 안녕하세요?"
성만이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같은 직장에 있는 임영환 씨의 자제라 해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다음 인사말을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여야 했다.
옛날에 대하듯이 말할 수도 없어서 가볍게 말하기로 하고는
"어머님은 안녕하시고?" "네, 건강하세요."
'그래, 그럼 또 보자, 잘 가" "네, 안녕히 가세요." 내가 말재주가 없음을 한탄하면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전에 임 씨는 쉬는 자리에서 말했었다. "그 녀석이 사회에 나가더니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야. 고졸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 전문학교라도 다녀야 하겠다고 그러지 뭐야."
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럴 것이다. 사회적으로 평균학력이 높아지고 보니 어디 가서 학력을 말하려면 고졸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된 것이다. 그 걸 성만이는 이제 체험하고서야 깨달았나 보다. 전에 제 아버지가 전문학교라도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할 때는 콧등으로 듣더니.
성만이는 살던 동네에서 개구쟁이로 소문이 자자 하던 아이였다. 골목골목 다니면서 아이들과 어울려 별별 짓을 다하고 다녔다. 남의 집 강아지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한 번 건드려보고 반응에 따라 그 후의 행동이 결정되었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 그냥 통과하고 조금이라도 으르렁대는 기미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고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한 대 때려주고 지나갔다. 강아지가 깨갱 하고 소리 지르면 주인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볼 때는 문 앞에 아무도 없는 때가 많아서 주인은 대문밖을 내다본다. 저만치 성만이가 가는 게 보이면 큰 소리로
"임 성만! 이 녀석 왜 우리 강아지는 때려?" 하고 소리친다.
성만이는 돌아보곤 싱긋 웃고 도망치는 게 순서였다. 주인은 성만이 뒤에 대고 소리친다.
"너 엄마한테 이른다."
하지만 성만 이는 그냥 즈네 집 쪽으로 달아났다. 개주인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강아지가 다친 것도 아니니 그만 됐어' 하고는 다음에 만나면 으름장을 놓아서 혼을 내주겠다고 가볍게 지나간다. 그런 것뿐이 아니었다. 동네에 작은 텃밭들이 있는데, 동네 주민들은 각종 푸성귀를 심어 여름엔 반찬거리를 조달하는 걸 커다란 재미로 여기고 해마다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었다.
성만이는 그 밭에서 재밋거리를 발견하고는 호박이 제법 아이주먹만 하게 자라는 걸 보면 나뭇가지를 찾아 가지고는 잘 크고 있는 애호박을 쿡 쑤셔 보는 것이 재미있어 몇 개를 못쓰게 해 놓곤 됐다는 듯이 웃곤 했다. 밭주인은 발견 즉시 성만이 엄마에게 항의하고, 성만이 엄마는 싹싹 빌어서 사과해야 했다.
그다음은 볼 것도 없이 성만이가 집에 들어 들어오는 대로 등짝을 몇 대 맞아야 했는데, 성만이는 울지도 않고 낯만 찡그리고 참아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다음 날이면 개구쟁이는 어디 재미있는 놀 거리가 없나 하고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게 일이었다.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하고 일 학년 까지는 그랬다.
덜렁대는 성만이를 보는 임 씨는 조금 염려스럽긴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크면 자연히 어른스러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그런 임 씨의 너그러운 태도에 불만을 토로하며 어쩌면 그렇게 태평하냐고 눈을 흘겼다. 하기는 낮동안에 일어난 일은 전부 엄마의 몫이었기 때문에 뒤처리는 항상 자신에게 돌아오는 게 불만이었다.
임 씨와 만난 것은 내가 신입사원일 때였다. 그때는 물이 귀해서 냉각수를 개천에서 끌어 왔었는데, 개천의 물이 마르기 시작하면 우리 팀은 냉동기가 서는 걸 막기 위해 자주 개천에 가서 꽂아 놓은 파이프를 잡고 휘저어 물이 토관 속으로 잘 들어가도록 하는 일이 일과 중의 하나였다. 명색이 냉각수였지만 개천물이 냉각탑을 돌아 냉동기에 들어가도 냉각수 역할을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응축기 카바를 열어보면 찐득한 물질이 동관에 가득 차서 부지런히 솔로 관을 쑤셔주어야 했다. 그 건 꼭 누런 코를 연상케 하는 물질이었는데 그 끔찍한 것을 매일 아니 근무하는 동안 심한 기계에서는 세 번을 보아야 했다. 물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팀이 따로 없던 시절이라 나는 가끔 임 씨에게 그 책임을 묻곤 했다. 임 씨는 임 씨대로 왜 내 책임이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물 문제는 비가 내리면 해소되었고 나와 임 씨의 갈등도 사라지고 업무로 연결되는 같은 부서원으로서 관계는 원만 해질 수밖에 없었다. 훗날 수원지방에 한강물이 들어올 적에 신갈지역도 덕을 보게 되고, 회사에 물관리 부서도 생기고 하여 우리 팀은 개천에 달려가서 파이프 혼드는 쇼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지던지. 임 씨와 물얘기를 하며 웃곤 하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물 이외에는 임 씨와 갈등을 일으킬 일이 없었다. 공무부가 분사하여 같은 처지가 된 후엔 동년배로서 종종 술잔을 나누는 기회가 있어서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낚시가 취미여서 월요일이면 지난 주말에 낚시 갔던 얘기를 풀어놓았고, 어느 땐가 초어라는 고기를 낚았는데 무려 65 cm 짜리를 낚았다는 것이다. 꽤 오랫동안 임 씨에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자랑 거리였다. 그가 초어를 낚던 순간을 해설하는 걸 듣는 건 재미도 있었다. 물고기의 특성이며 포인트의 중요성, 그리고 채야할 타이밍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낚시에 대해 문회한인 내가 듣기에도 머리에 쏙쏙 들어올 뿐 아니라 재미도 있었다.
내가 주말이면 산으로 튀는 걸 잘 아는 임 씨는 나에게 낚시를 권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찌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때로는 그 행위가 명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를 닦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어느 해 여름엔 그의 설득에 못 이겨 간단한 낚시 도구와 가방까지 장만해서 그를 따라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는 분사하기 전이었는데, 공무부원 여러 명이 함께 했었다. 공무부차장도 부원의 인화를 위해서 동참했었다. 원천'웃방죽'이라고 불리는 저수지로 낚시를 갔다.
주말이니 밤 낚시하고 이튿날은 쉬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살아 꼼지락거리는 지렁이를 손톱으로 잘라 낚싯바늘에 꿰는 방법부터 찌와 낚시바늘 간의 길이를 잡는 방법 등 기초상식도 배웠다.
그날은 나도 낚시꾼이 되어 호수의 잔잔한 수면을 지켜보는 정중동의 시간을 가졌다. 식사는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모두들 월척을 낚아 보겠다는 각오로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하게 찌를 주시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낚시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침묵의 세계였다.
밤이 깊어 가도록 물고기는 입질만 해대고는 걸리는 놈이 없었다. 전원이 같은 형편이었다. 나는 차츰 지루하고 힘들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건너편에서 등불을 밝히고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텐트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취미가 등산인 내게 낚시는 별다른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밤새 산행을 할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찌를 지켜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낚시꾼이 야간산행하는 산꾼을 보는 시각이나 한 군데 앉아서 꼬박 밤을 지새우는 낚시꾼을 보는 산꾼이나 서로 이해하기에는 간극이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임 씨와 전기팀의 심 씨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파로호에 간 적이 있었다. 여름휴가 때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도 끼어서 간 것이다. 강원도에 있는 호수를 가본 지가 오래여서 그랬는지 하여튼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호수에선 배를 타고 멀리 갔었다. 그 덕에 평화의 댐을 구경하기도 했었지.
우리가 잡은 자리는 물이 많이 빠져서 흙이 드러난 경사진 곳이었고, 겨우 자리를 잡고 밤을 새웠지만 고기란 씨가 말랐는지 입질도 거의 없었다. 자리를 옮겼지만 마찬가지였다. 임 씨는 나와 심 씨의 원망을 들어야 했고 그는 입가에 특유의 계면쩍은 미소를 띠고는 별로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파로호 안쪽 깊숙이 들어갔던 곳은 인가도 별로 없었던 곳이었는데, 여기 오는 삶들은 빚을 진다거나 하여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곳 까지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 씨는 아는 것도 많았다. 그렇게 파로호의 낚시 여행은 빈손으로 끝나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파로호를 구경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즈음에 그의 말이 어눌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직접 묻기도 곤란해서 그냥 지켜보았었는데 진단결과는 뇌수막염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고 꽤 무서운 병인가 보다 하고 소름이 돋았었다. 술 잘 마시고 낚시 다니던 그가 갑자기 들어 보지도 못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다.
며칠 후에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가 누워있는 임 씨를 보았다. 호흡기를 달고 목에서 '그렁그렁 그르륵' 하는 소리를 반복하여 내면서 의식이 없는 그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쉽게 깨어나서 다시 우리와 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임 씨는 어지간히 운도 없는 사나이 었던 거다.
부인의 말은 가망이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부인은 안색이 몹시 초췌하게 보였다. 아이들 셋을 거느리고 살아갈 생각을 하면 알이 캄캄했을 것이다. 일가친척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있다 해도 도와줄 사람이 있겠나 싶기도 했다. 그녀는 어려운 살림을 꾸려온 당찬 여인이었다.
임 씨는 직장을 잡기 전에 곱돌로 그릇을 만드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아마 소자본으로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물건은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 나갔고, 심지어는 돈을 싸들고 와서 물건을 먼저 달라고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렇게 번창하던 사업이 일 년을 넘기자 차츰 기울기 시작 하였다. 경영이 무언지 알지도 못하던 임 씨는 거의 매일 판매업자와 술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빈번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사업이었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소위 기술자라고 칭하는 사원들이 불만을 품고 일을 착실하게 하지 않아 불량품이 늘어났고, 가져가는 측에서는 불만이 쌓여 결국엔 공장문을 닫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사업을 정리하고 약간의 빚을 갚고 나서 직장을 잡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임 씨가 한 참 잘 나갈 때 임 씨 부친이 재혼을 하겠다고 해서 사귀는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이건 시집살이를 새로이 하자니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집 사람과 하기휴가 캠프에서 많은 얘기를 했었는데 서로의 과거사를 다 털어놓았었다고 했다. 여성끼리 비슷한 살림살이에 연배도 비슷하여 말이 서로 통했던 모양이었다. 사업을 접고 나자 부인은 각오를 새롭게 하고 살림을 차려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시아버지는 반대했으나 이미 단단히 결심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셋방을 얻어 나갔다고 한다. 임 씨는 부인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어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집안의 수입이란 임 씨가 벌어오는 것뿐인데, 그녀가 생각건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갔다가는 임씨네 식구가 살아갈 희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커가고 학교를 보내야 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다급 하기도 했다.
독립을 선언하기를 백번 잘 한일이라고 임 씨 부인은 말했다고 한다. 그 후에 임 씨가 취직하고 고정수입이 생기자 살림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제법 큰 회사에 이직하여 부인이 알뜰하게 꾸려 나가는 가계가 안락한 집안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청천벽력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그때까지 야무지게 가족을 건사하며 살아온 임 씨 부인도 눈앞이 캄캄하여 정신이 없게 되었는데,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생각할 때 아무 대책도 없이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남편의 호흡기를 떼기에 이른다. 앞으로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아가야 할 걸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조문을 다녀온 뒤로는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사 갔다고 한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나 임 씨 부인의 처지로 본다면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다. 남편이 죽고 아낙네 혼자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는 게 죄 될 것은 없는 것이지만 세상사람들의 눈은 그렇지가 않다. 그냥 안되었다는 말로 가엽게 여긴다면 견딜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좋지 않은 풍습이 가만히 놔두질 않고 입방아로 힘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같은 팀에 있던 사람들도 혹시 소식을 아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을 뿐이다. 세월이 가면 떠난 사람도 잊게 마련이라지만 꺼병이의 미소는 가끔 떠오른다. 다른 세계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살아 있다면 만나서 술도 한 잔 하면서 지난 일을 얘기하는 재미도 있으련만.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시간이다. 히죽이 웃던 그의 미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