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여립이 될지, 정철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풍천거사의 地스토리]
절대악 선조의 권력 장난감이 된 기축옥사 정여립과 정철의 비참한 최후
누가 정여립이 될지, 정철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하는 곰물인데 어찌 따로 주인이 있겠는가?"
《선조수정실록》에 실린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의 그 유명한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이다.
말은 시간과 장소의 영향을 받기도, 주기도 한다. 정여립의 이 발언은 현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16세기 조선은 역모였다. 더욱이 사악한 군주 선조에게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불충, 아니 역심의 발로였다. 사악한 군주 선조는 출신이 불량했다. 명종의 적자가 아닌 방계 왕족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평생 콤플렉스가 됐다.
선조가 즉위하자 권력의 주류가 교체됐다. 개국파인 구악 훈구가 몰락하고, 신악 사림이 득세했다.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과거를 통해 입법,사법, 행정을 서서히 장악한 사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섰다. 선조는 밑천이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로 밤을 지새웠다.
사림이 분열했다. 동인과 서인으로 찢어져 정쟁에 몰두했다. 4.19로 집권한 민주당 신구파 싸움이 연상된다.
사악한 군주 선조는 하늘이 준 선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분열의 씨앗이 뿌려졌의니 열매만 따먹으면 됐다. 두 정파의 개싸움을 즐기며 절대왕권만 챙기연 됐다.
마침 황해도관찰사 한준 등의 고변이 올라왔다. 전라도 진안 죽도에 본거지를 둔 정여립의 대동계가 모반을 준비 중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원래 눈칫밥 먹고 자란 애들이 영악한 법이다. 선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정여립은 율곡 이이의 총애를 받던 서인 출신이었지만 비주류였다. 동인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기가 막히게도 정여립은 동인과 친분이 두터웠다. 선조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주모자 추포렁이 떨어지자 정여립은 근거지 죽도에서 자결했다. 자결은 역모의 자백이 됐다. 아지까지도 정여립의 모반 사건의 진실은 미궁에 빠져 있다.
서인 정철이 선조의 학살자로 선택됐다. 선조의 공포정치가 막을 올랐다. 선조는 증거를 찾았다. 정여립의 집에서 다량의 편지와 글이 발견됐다. 조선판 카톡뭇자와 녹취가 나온 것이다. 선조는 꽤재를 불렀다. 증거는 해석하기 마련이다. 선조의 뜻대로 해석했고 수하들은 그대로 따르면 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학살극이 자행됐다. 사약은 양반이었다,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연인과의 이별 눈물도 역모로 해석됐다고 전해진다. 무려 천 여명의 동인이 비명횡사했다. 역사는 이를 기축옥사로 기억하고 있다.
정철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돔인백정이라고 불리워도 아랑곳하지않고 동인을 죽이고 또 죽여 씨를 마렸다. 당시 멸문지화를 당해 전라도 나주로 피신한 광산 이씨 후손들은 아직도 칼로 고기를 다질 때 정철의 이름을 주문처럼 부른다고 한다. 400여 년 조상의 피맺힌 한이 아직도 뼈에 사무친 탓이다.
정철은 자신과 서인의 천하가 열릴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선조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선조는 지옥에서 온 절대악이었다.
선조가 피의 대학살극을 즐기고 있을 때, 일본산 살인귀 히데요시가 침략을 준비했다. 기축옥사 3년 후 수십만 살인귀들이 현해탄을 넘었다.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줄행랑쳤다. 분노의 민심이 경복궁과 도성을 불태웠고, 덕분에 일본군은 한양에 무혈입성했다. 잉진강 방어산도 포기한 조선군 닥분에 존평양까지 진격했다, 공포에 질린 선조는 평양도 버리고 의주로 도주했다. 여차하면 압록강을 넘어 명에 귀부하려고 했다, 6.25 때 인민을 버리고 중국으로 내뺀 김일성의 16세기 버전이 될 뻔 했지만 동인 류성룡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보를 올리고 육지에서 명이 평양을 탄환하자 선조는 다시 본업에 집중했다. 이번엔 동인을 중용했다. 정철을 비롯한 서인이 실각했다. 전란을 이용해 무너진 왕권강화를 도모했다.
선조는 기축옥사의 사형집행인 정철예 대해 "악독한 정철이 내 선한 선비를 다 죽였다"리고 배신했다. 요즘으로 알하면 유체이탈화법의 전형이다. 정절은 절대악 선조에게 놀아난 동인백정에 불과했다.
정치는 필요악이다. 근대 시민혁명은 사화계약론에 의해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악 정부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절대선인 양 포장한다. 선조가 그리 했듯이 말이다.
정치는 절대선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들은 이를 잘 알았기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권력분립을 제도화했다. 전대귄력이 절대부패한다는 진리를 체헝한 덕분이다.
난세다. 누가 정여립이 될지, 정첤이 될지
모른다. 결국은 선조와 같은 절대악의 장난감이 될 것이라는 진리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