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 글은 하이퍼리얼리즘의 붕괴, 혹은 최고의 찬사를 담은 작품의 설계도다.
1. 제목의 슈퍼, 두퍼, 하이퍼는 각각 하나의 그림을 의미한다. 각 그림은 모두 같은 대상을 다른 식으로 담은 그림들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하나의 거대한 액자에 유리 없이 위쪽만 고정당한 채로 있다.
슈퍼.
초고화질 카메라를 통해 찍은 사진이다. 붓이 인간이 쓰는 도구인 이상 카메라라고 하는 도구를 통해 만든 것도 하이퍼리얼리즘이 안 될 이유가 없다.
두퍼.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이다. 무엇을 묘사했는가는 분명하나 절대 하이퍼리얼리즘이라 하긴 어려운 그림이다. 그러나 작품을 만든 이는 그것과 같은 그림이 있고 그것을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그린 작품이라 주장한다.
하이퍼.
인간을 초월한 다른 종이 바라본 사물을 그린 그림이다. 그 대상은 개미고, 개미의 겹눈으로 본 대상을 그린 그림이다. 하이퍼는 인간이 보는 그림이 현실이라고 누구도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개미가 인류보다 많은데 개미의 시선을 묘사하는 게 더 현실에 가깝지 아니한가.
2. 이 셋은 서로 겹치면서 의미가 확장된다.
두퍼+하이퍼.
광활한 우주 외계의 이종이 바라본 대상이 두퍼로 묘사된다면, 그리고 그 외계인이 충분한 지성이 있고 수가 인류보다 많다면 하이퍼리얼리즘의 표준은 두퍼로 재정의되지 않을까? 우리가 개미의 세상을 생각해 본 것처럼.
두퍼+슈퍼.
두퍼의 원본이 되는 그림도 초고화질의 사진을 찍어 온 것이라면, 그림이 있는 종이의 현실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를 묻는 것이다. 내가 찍은 것은 그림의 내용인가 아니면 그림이 있는 종이인가.
슈퍼+하이퍼.
이를 통해 우린 생명을 넘어 생각한다. 과연 다른 생명이 보는 세상이 아닌 기계의 센서가 인식하는 세상은 리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가.
3. 작품의 배치는 다음과 같다. 종이는 A4, 액자는 1000mm*350mm쯤의 사이즈이다. 앞서 말했듯 액자 속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쪽만을 고정한 채 유리 없이 걸어둔다. 물론 액자와 그림에도 일정한 간격이 있다. 그리고 약간의 나풀거림을 준다. 종이를 가벼운 것으로 쓰고 벽에 밀착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관객이 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범위는 매우 가깝다. 다른 작품처럼 일정 거리 이상의 접근을 막지 않는다. 그렇기에 작품은 관객이 다가감에 따라 생기는 바람으로, 관객의 콧바람 등으로 자연스레 나풀거린다. 이런 종이의 움직임으로 관객은 종이에 담긴 ‘그림’이라는 내용이 아닌 종이 그 자체를 보게 만든다.
4. 하이퍼리얼리즘이 극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것에,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림의 내용인 거짓이 아닌 그것을 담는 액자, 종이, 유리의 부재라는 현실을 관객이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반대로 생각한다면 하이퍼리얼리즘을 칭송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 간단한 길로 가지 않고 현실에 가까운 것을 상상하여 진실인 양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이런 반론이 제시되기 쉬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림의 내용을 현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장르가 된다. 현실을 담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잊게 하는 마술로서의 장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