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피하는 것은 가능할까?

by 삼육구십오

시간은 피할 수 있다. 그럼 시간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시간과 개인이 인지하는 시간. 우선 물리학에서의 시간을 생각해 보자. 사실 엄밀히 말한다면 시간은 없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럼 물리학 공식 등에 사용되는 t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 당신. 그것은 단지 우리가 거시적 세계의 존재이기에 생기는,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이다. 즉 개인이 인지하는 시간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시간은 회피할 대상이 아니다. 진정한 과학의 발전을 위하는 과학자라면 t는 피할 것이 아닌 왠지 있으면 식이 성립하는 마법의 숫자이다.

그럼 우리가 살펴볼 것은 우리들의 인지적 시간이다. 당신이 인식하는 시간이 역행한 기억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다시 올라가 구름이 되는 광경을 보더라도 당신은 순행하며 비의 역행을 관람한다. 사실 비라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것이 거대한 흐름에서의 정방향이라고 해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거대한 역행 중이어도 우리의 인지가 정방향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개인이 인지하는 시간이다. 그럼 시간을 피하는 방법은 쉬울 것이다. 당신의 인지를 없애는 것, 이미 있는 것을 덜어 낼 수도 있고, 애초에 경험이 없도록 만들 수 있다.

이미 경험한 인지를 없앤다는 것은 망각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망각은 과거의 것을 잊는 것이고 시간을 피한다는 것은 미래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시간을 피한다 하면 미래를 향한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과거도 시간이란 것을 무시하면 안 되고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인지 속에 있다. 망각한다면 당신이 인식했던 그 시간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과거)을 피했다. 그것이 좋은 시간이어도 좋지 않은 시간이어도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망각은 불가항력으로 당신이 시간을 피하게 만든다. 그리고 완전한 망각이 아니더라도 부분적 소거와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 우리의 기억은 당신이 실질적으로 겪은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으로 변화함으로써 시간을 피하게 만든다.

그럼 인식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건 더 쉽다. 수면. 우리가 매일 두 번씩 하는 수면. 그 긴 밤을, 하루와 하루 사이의 지루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을 우린 늘 피한다. 수면 마취도 같다. 수면 마취를 통한 수술도, 그 길고 고통스러운 수술로부터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것은 앞선 망각과 달리 조금 더 개인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순간을 피하는 방법이다.

추가적으로 술 등을 이용해 시간을 피할 수도 있다. 그렇다. 흔히 필름이 끊기는 경우다. 이 경우는 시간을 피한다기보단, 도피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당신이 술에 취하고 싶은 건 시간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개인의 인지의 시간이다. 타인이 술에 취해 퍼진 당신을 본다면, 그의 시간에는 당신 또한 있을 것이다. 당신이 피한 시간이지만 그 사람은 그 시간을 피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가 만일 당신의 친구라면, 그는 당신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간을 빌려 당신이 도피한 시간의 퍼즐이 맞춰진다. 이 경우에 그는 당신이 시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시간 경찰일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친구처럼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와의 시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의 시간에서도 당신이 그 누구와의 상호작용을 차단한다면, 당신은 그 차단한 만큼의 사회적 시간을 피한 게 된다. 그리고 영화 등에서 나오는 기록 말살된 인간도 사회적 시간을 피한 존재로 구분 가능할 것이다.

시간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매일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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