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액자, 그림, 유리로 구성된, 흔히 그림이라 칭하는 것들과 같은 모습이다. 다만 유리 위에 검은 직사각형이 있어 그림의 일부를 가린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조금 두꺼운 유리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검은 직사각형의 검은 모자이크. 작품을 만지는 것은 안 되지만, 작품의 주변에 다가가는 것이 허용된다. 먼 거리에서 조금 움직이는 것이 아닌 더 가까운 곳에서 검은 직사각형과 그림 사이의 빈틈을 찾는 것을 허용한다. 두꺼운 유리로 그림과 검은 직사각형 간의 위상 차이로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더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가 생긴다. 이것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림은 나체의 남성과 여성이다. 그러나 중요 부위는 검은 직사각형을 통해 가려져 있다. 추가적으로 두 인물의 얼굴은 없다. 액자의 윗면과 그림의 시작점은 공백 혹은 얼굴이 아닌 두 인물의 목으로 시작한다. 즉 얼굴 없는 두 남녀의 나체, 은밀한 곳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누구도 볼 수 없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리의 두께와 검은 직사각형의 크기다. 둘을 오묘하게 조정하여 조금 더 옆에서 혹은 위, 아래에서 본다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그 미묘한 지점을 잘 살리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된다.
그럼 이쯤에서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굳이 검은 직사각형일 이유가 있을까? 그 직사각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림도 임신한 여성으로 바꾸고 그 검은 직사각형을 뱃속의 태아 그림으로 바꾼다면 고전적인 그림의 형태에 생명의 잉태를 그린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의 모습은 한계가 많다. 관객이 그 안의 그림에 본능적인 관심을 만들기 힘들다. 이것이 첫 문제가 된다. 두 번째 이유는 흔한 홀로그램이랑 차이점이 없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고상하게 액자에 걸었다 수준의 차이만을 만들 뿐이다. 그리고 유리 위의 그림은 보는 각으로 인해 새로운 것을 보이거나 무언가를 숨기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 검은 직사각형이 아닌 액자 속의 그림을 조명하는 지금의 형태를 고안한 것이다.
이렇듯 가려진 나체는 성적인, 변태적인 것이 아닌 강렬한 호기심을 만들기 위한 강렬한 재료가 된다. 그리고 그 강렬한 호기심으로 시작되는 관음이 작품의 완성이 된다. 본능적인 의문을 만들어 내는 그 속을 보기 위해,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관객은 자신이 보는 각도를 변화하며 관람하게 한다.
이 작품은 관객이 보는 것에 따라 변화한다. 관객과 상호작용을 고전적 형태의 그림에 검은 직사각형을 더하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어떤 센서도 기기장치도 없다. 첨단 장비나 기기장치의 힘 없이도 고전적인 틀을 비트는 것으로 상호작용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