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파(Tulpa)를 아는가? 간단하게 상상의 친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만든 사람의 의지에 의해 독립적인 사고와 인격을 지니는 자율적인 사념체다. 물론 만든 이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만 툴파를 더욱 수행할수록 호스트가 의도적으로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툴파가 스스로 생각하고 답하는 수준까지 발전 가능하다. 그리고 툴파가 스스로 생각하고 답하는 것만이 아니라 호스트와는 다른 성격과 취향 등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간단하게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는 것을 툴파라 칭한다. 비록 정신 의학적으로 정의되지는 않은 개념이지만 본인이 툴파를 만들었다 주장하는 이는 꽤 많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어릴 적 하나씩 만드는 상상 속 친구를 생각하면 된다.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점점 성장하고 사회를 학습하며 다른 자아를 없애고 하나의 자아로 고정된다. 과연 아이가 상상 속 친구에게 영향을 받아 취향, 행동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나와 상상 속 친구와의 경계가 약해서 혼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정신 질환이 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 간단하게 다중인격이다. 툴파를 처음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건 아마 ‘내가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 다중인격’ 일 것이다. 둘 다 하나의 신체에 두 개 이상의 자아가 있는 상태이기에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툴파는 자아를 자신의 컨트롤 아래 두는 것이 가능한 반면 다중인격은 그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하나의 신체 속 하나의 자아가 지금 사회적 통념이고 개인이 불편을 호소하기 때문에 다중인격은 장애가 맞다. 그러나 불교는 하나의 자아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한다. 무아는 자아라는 고정된 것은 없고 순간에 모인 찰나의 결정이고 이는 곧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즉 불교는 하나의 신체에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붓다가 약 2500년 전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불교를 통해 전파한 핵심 가르침이다.
그럼 자아는 하나라는 믿음은 어디서 생긴 것인지 생각을 해보겠다. 본래 호모 사피엔스는 아니 어쩌면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고정된 자아가 없는 것이 기본이지 않을까? 인간이 인지 혁명을 통해 신쯤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무언가를 믿으며 사회가 통합되기 전이나 그쯤에 같이 생긴 것이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뭉치기 위해서 ‘너’에 반하는 ‘나’를 만들거나 ‘나’에 반하는 ‘너’를 만들었든, ‘너’와 ‘나’를 만들었기에 공통된 하나를 믿게 만든 것이다. 이는 비단 호모 사피엔스 간에서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른 동물의 행동을 연구했을 때 자아가 있더라 하는 결과도 결국 자아라는 필터를 낀 인간 시점에서의 연구 결과일 뿐, 타인의 속을 볼 수 없던 것처럼 다른 동물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단일한 자아도 인지 혁명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너’ 즉 타인을 보는 것은 대상의 내부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 ‘너’가 고정된 자아라는 생각이 생기고 ‘나’라는 고정된 자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꽤 설득력이 있다.
앞서 말한 것이 이 사회가 단일한 자아를 만들어 낸 과정이다. 다중인격이 장애로 분류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사회가 그런 고정된 자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여러 자아가 있더라도 일상에서 컨트롤이 안 되는 지점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근본적으로 장애와 병의 분류가 그것을 지닌 사람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하나의 인격이 진두지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여러 개의 인격을 지니고 그들의 통제권이 없는 사람은 사회적, 개인적으로 불편함이 따라오고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사회가 볼 때 여러 개의 자아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으로 뻗어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가 인지 혁명을 통해 신을 생각하고, 화폐를 생각하고, 국가를 생각하게 된 것처럼 단일한 자아는 우리가 상상하고 믿도록 만들어진 이야기다. 더 나아가 ‘자아’ 그 자체가 우리의 상상과 합의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툴파, 해리성 정체감 장애, 붓다의 사상 등 우리는 이미 자아는 단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힌트를 지닌 채로 살고 있다. 단일한 자아는 우리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만든 가장 기초적인 우리의 믿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