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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초 Oct 27. 2024

집, 무료한 시간


어린아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방에 혼자 노는 꼬맹이의 시간은 길다. 창문 난간에는 참새 몇 마리가 날아와서 앉았다. 그 자리에는 항상 참새들이 나란히 앉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짹짹거렸던 것 같다. 바닥에 앉아 물끄러미 작은 참새들을 본다. 지금 생각하면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새들이었다.


아주 어렸던 꼬마는 그런 감정은 못 느꼈던 것 같다. 종종거리는 참새들을 보면서 심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고개를 움직이니까 참새도 고개 방향을 바꾸는 걸 봤다. 내가 움직이면 참새도 똑같이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 방향을 틀어 살짝 움직여 봤다. 그리고 참새도 움직이는지 슬쩍 흘겨봤다. 몇 번 해보니까 그 추측이 맞았다. 그런데 그 우연의 일치는 얼마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 아니어서 심통이 나자, 손으로 새들을 확 쫒아버렸다.


그때 살던 집을 묘사하면 엄마는 그렇게 어릴 적 기억도 하냐며 깜짝 놀라신다. 아마도 3-4살인 것 같다. 부엌은 하늘색 타일이 깔려 있었다. 부엌에는 젖병 몇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일 년 반 정도 아래인 동생의 젖병이었나 보다.


심심하니까 어슬렁거리면서 젖병을 건드렸다. 입으로 무는 꼭지 부분을 눌렀다가 다시 모양을 바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더 꾸욱 누르니까 젖꼭지가 병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걸 똑바로 만드는 법을 몰라서 난감했다. 망가뜨렸다고 여겼던 것 같다. 당황한 마음에 놀던 걸 집어 치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신기한건 그 다음날이 되면 젖병 모양이 바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엄마가 다시 제대로 해놨겠지. 신기하게도 엄마는 별로 신경 안 쓴 것 같다.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래서 다음번에도 또 누르면서 놀았다. 심심하고 답답하니까 젖꼭지를 꾹 누르다 병 속으로 또 빠뜨려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엄마가 다시 똑바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 마음 때문에 어느 날부터는 시들해져서 그 놀이를 안했다.


그 집에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거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다. 엄마와 집에 돌아갈 때 다시 집에 갈 생각을 하면 좀 힘들었다. 그래서 “엄마,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라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계단이 덜 힘들 것 같아서 오늘은 계단으로 가보자고 했는데,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언제 여길 다 올라가냐는 마음 때문에 귀찮기도 했고 힘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업어 달라고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꼬마라도 엄마가 힘든 걸아니까 눈 딱 감고 계속 업혀 있지도 못하겠더라. 좀 업혀 있다가 결국엔 다시 걸어서 올라갔다. 업히는 것도 불편하고, 걷는 것도 힘들어서 난감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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