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철학자 히파티야 이야기
아주 오래된 습관 중에 하나가 이 책 저책 가리지 않는다는 거다. 딱딱한 전문서적이나 철학책도 읽지만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가벼운 웹툰도 즐긴다, 아니 즐겼다. 얼마 전에 <나빌레라>가 드라마로 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따져보니 내가 그것을 웹툰으로 본 게 3-4년 전 일이었다. -유료로 변경되는 바람에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우화는 우화로, 신화는 신화로, 불가사의는 시적 판타지로 가르쳐져야만 한다.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유약한 사람들은 그런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나서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그들이 그런 가르침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진리를 위해 그러하듯, 미신을 상대로 싸워야만 한다. 미신은 막연하고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항해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진리는 시야와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
최근 어떤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내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쓴 이가 누군지 챙겨보니 히파티아였다. 그때 오래전, 그녀의 기구한 삶에 관한 글을 읽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소환됐다.
로마 바티칸 시국의 교황 궁 서명 실 4면 중 한쪽에 <아테네 학당>이라는 거대한 프레스코가 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였던 라파엘로가,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 명으로 인류에게 탁월한 지적 유산을 남긴 사상가들을 그려 놓은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과 그 이후의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뿐만 아니라 이슬람 신학자 아베로에스, 조로아스터 같은 이교도 창시자도 눈길을 끈다. (교황의 집무실에... 이교도라?)
이 벽화에 등장인물은 58명인데 그중 신원이 확인된 철학자 등은 20명에 불과하고 그 인물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 히파티아다. 그녀는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직후,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이며 철학자였다. -그녀의 부친도 뛰어난 수학자였으며 그녀와 비견할 수 있는 여성 과학자는 20C의 마리 퀴리 여사 정도다-
그런데 그런 히파티아를 라파엘로가 초안에 화폭 중앙에 그려 놓자, 대노한 교황은 그에게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남성우월주의적인 사고에다가 그녀가 415년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광신자들에게 처참히 마녀사냥을 당한 비운의 -광신자들의 시각에선- 이교도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25세의 호기 넘친 라파엘로가 그렇다면 작업을 포기하겠다고 맞서자 교황은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정 그렇다면 한쪽 구석에 너무 예쁘지 않게 그리게,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이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인물로...”
하지만 교황의 의도와는 다르게 완성된 그림에서 히파티아는, 안 예쁘게 그려지지 않았고 심지어 유독 눈에 띄었다. 다른 이들은 무리 지어 토론하거나 혹은 홀로 무언가에 빠져 있는 데, 좌측 하단의 서 있는 그녀는 순백의 옷을 입고 고요히 신비한 침묵 속에 싸여 ‘정면’을 바라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벽화를 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그려 놓은 것이다. 우측 하단에도 정면을 바라보는 젊은이가 보이는 데, 그는 라파엘로 자신이다- 그 그림을 보고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당신과 나는 밤낮으로 성경을 읽는다/ 당신은 검은색을 읽지만/ 나는 흰색을 읽는다]라고. 대단한 칭송이 아닌가?
히파티아는 철학이 종교의 시녀가 되는 암흑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사회 전체를 개선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녀는 이교도라기보다는 엄밀히 말해 신 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제창된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다양한 갈래 중에서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경향을 갖는 새로운 풍조-였다. 난해하고 신비주의로 치우쳐 가고 있던 기존의 철학 경향을 배격하고 논리와 이성에 의한 이해를 강조 히파티아.
그녀의 쉬우면서도 심오한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의 그녀의 위엄과 미덕에 압도되어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숭배 시 되기까지 했다. -지독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녀의 죄라면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은 것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살 정도로- 한 번은 어떤 사내가 청혼을 하자 그녀의 대답이 알렉산드리아의 레전드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진리와 결혼했다.”
그러나 당시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였던 키릴 루스는, 총독인 오레스테스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했고 영향력도 무척 초라한 수준이었다. 질투심에 빠진 대주교는 그 대목에서 희생물이 필요했고 그게 히파티아였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2009년에 개봉된 <아고라>를 참조해 보길 권한다-
이 혹독한 코로나 중에도 나는 새로운 공부를 다시 계획했고 실천해, 지금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젊은 날 지리산 종주 길에 나서면서 새벽 구례 화엄사 앞에서 가슴 두근거리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 기억이 있다. 노고단‧뱀사골‧천왕봉을 향해 걸으면서 아... 난 참 행복했었다. 지금 내 심정이 화엄사 앞 그때와 같다. 이번엔 천왕봉이 아니라 ‘진리’와 가까워지기 위해서지만!
(봉숭아 학당이 아니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