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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Feb 15. 2023

<개·사·쓰·악>

뭐가 중한디?

     

요즘 많은 젊은 친구들의 이름이 예쁘고 멋지다. 그런 이름일수록 오리지널 이름일(부모가 지어 준) 가능성이 낮다. 개명하기가 간단한 성형수술 하는 것보다 쉬워서 그렇다. 내 주위에도 개명한 이들이 많다. 특히 여성일수록 그 수가 많은 데... 개명도 일종의 신종 화장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이름(명칭)이나 말이 ‘개명되거나 사라지거나 쓰지 말아야 할 경우 또는 약속한 대로 써야 할 때’가 있다. 그걸 줄여서 <개·사·쓰·약>이라고 한다. 내가 만든 말이니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는 하지 말기 바란다.     


지난 1월 달 안에 신·구정이 다 들어가 있는 덕에 우리는 서양인들이 겪지 못하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양력의 첫날이 신정이라면 음력의 첫날을 우린 구정이라 했다. 1월 1일이 되면 우리는 한 달여 시간차를 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두 번씩이나 주고받는다. 좀 어색하긴 해도 좋은 말이라 스스럼없이 한다. 요즘은 신, 구정이라 말을 쓰지 않고 새해라는 말로 두루뭉술 넘어가는 것 같다. 신·구정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시나브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담이 있다. 부정적인 이미지라 그곳 주민들에게 기피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삼천포 시는 당시 이웃 사천군과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삼천포라는 이름이 사라진 지 벌써 27년이 다 되어 간다.     


<Bible>의 올바른 명칭은 성서인가, 성경인가? 결국은 같은 말이지만 우리 천주교에서는 2005년 9월 이후 성경이라고 부르고 있다. 출애굽기는 탈출기로, 전도서는 코헬렛으로... ‘야훼’라는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도 ‘주, 주님’이라고 대신 쓴다. 이렇게 성서와 출애굽기와 탈출기 그리고 야훼라는 명칭은 쓰지 않고 있다.     

요즘은 <정신분열병>이라는 말 대신 <조현병>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 역시 자체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인상과 편견 때문에 정신병 같은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현병이라 개명해 부른 지도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남에게 자기 집 아이들을 소개할 때 ‘저희 집 아이들입니다.’라는 말을 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희 나라에서는~’라는 말은 있지만 쓰기엔 옳은 표현이 아니다. ‘저희’란 ‘우리’의 낮춘 말인데, 자기 집 아이는 몰라도 ‘나라나 민족’을 그렇게 낮춰 말하면 틀린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물을 존대하는 것도 절대 피해야 한다. ‘햄버거 나오셨습니다.’ ‘그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또 말을 듣는 상대가 ‘말하는 이나 주체’보다 윗사람이라면 높임말을 써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손녀에게 물었다. “엄마 집에 있니?” 이때 답은 “네, 없어요.”가 맞다. “네, 집에 안 계세요.”라고 쓰면 안 된다. 이런 걸 ‘압존법’이라고 한다.     


같은 중국 사람인데 삼국지의 劉備는 유비라고 부르면서 毛澤東는 모택동(한국 한자음)이라고 부르지 않고 마오쩌뚱(중국 원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학계에서도 해석이 분분하지만 황제 체제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세워지게 된 신해혁명(1911년), 이전의 인명은 한자음으로 부르고 그 이후는 원음으로 부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약속이다.     


이렇게 명칭(言)에 대해 <개·사·쓰·약>의 경우처럼 이런저런 숨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명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 시시비비가 벌어지는 것도 있다. 지금도 전 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전염병의 이름을, <우한 폐렴>이니 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일명 코로나)라고 불러야 한다느니 하며 옥신각신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다.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시쳇말로 ‘뭐가 중한디’ 모르는 패거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곧 방한하기로 한 중국 주석의 심기를 거슬리고 싶지 않아 중국 지명인 <우한>을 병명과 같이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어쨌거나 집권당과 중국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으니 이런 사소한 것으로라도 스크래치를 내고 싶은 심보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처럼 애매한 때에 그런 억지를 부렸는지 모르겠다. 요즘 유치원생들도 이러고 놀지는 않는다.     


[개명, 신·구정, 삼천포, 야훼, 조현병...] 등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긍정적 입장과 합리적인 사고’를 지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나름 애쓰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굳이 ‘우한~’이라는 이름을 붙여 서푼짜리 보다 못한 알량한 만족감을 채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신종 바이러스 이름을 붙일 때,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이나 동물 이름을 피하도록 한 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정치적인 사람들의 작태란 참 꼴불견이다.     


팽목항 사건을 세월호 사건으로 부르는 이유는 지명이 들어가는 것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어쨌든 이태원 참사도 10.29 참사로 불러야 한다는 말도 그런 연장선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뭔가 중한디?”     


훗날... 이 단어 중에서 어느 것이 살아남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이러고 있는 나도 뒤돌아보니 할 일이 참 별로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별 걸 다 궁금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울릉도 나래분지 눈꽃 축제에서 만난 ULLA다. 울릉도 고릴라라는 뜻인가? 이름은 이렇게 막 지어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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