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을 꿈꾸다

그 여정에서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

by 장영철 Francis

몇 주 전 주말 새벽. 카메라를 들쳐 메고 무작정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길을 나섰다. 흥해를 지나 장사해수욕장 옆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과 함께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 삶의 계획 하나를 또 한 번 더 되돌아봤다.

(... ... ...)


나이가 들어도 내 맘은 비어 있을 틈이 없다. 나는 세상의 그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늘 번잡스러운 삶을 산다. 난 내 맘이 비어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큰 울림을 낼 수 있고... 심적으로 관대하고... 보다 알찬 삶을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래서 퇴직을 하면 난 아주 오래전부터 <뚜벅이>가 되어 이 산하를 한 바퀴 돌아볼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같이 할 동무는 카메라다.


... 무심(無心)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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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가까이하면서 평소 책을 통해 얼추 이름만 알고 있던 앙리 까르띠에 뷔레송이나 로버트 카파 등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그 뷔레송의 말을, 카메라 셔터기에 손을 올리면서 나는 늘 읊조리곤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다>


사진을 제대로(본격적으로) 찍기 전에 사진은, 내게 있어서 인증 샷과 같은 것이었다. 누구랑 어디엔가에 , 갔었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로서.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는 차후의 문제다.


이제 나는 피사체를 앞에서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의 계기가 됐다. 그 사진기를 들고, 그날 새벽 동해안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잠시 장사해수욕장에서 차 한 잔을 마신 나는 다시 길은 나서 강릉까지 다녀왔다. 그 국도변에서 만난 많은 바이크 족들, 사이클 족들,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반가운 (의외로 많은) 뚜벅이 족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뜨거운 아스파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내가 뚜벅이가 되면 난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기도를 하며 이 길을 걸을 것인가?


얼마 전, 아는 이가 시 한 편을 보내왔다.



여행하다

사랑하다

사진 찍다

이 셋은 같은 말이다


그날의 바람,

그날의 구름,

그날의 몸짓,

그날의 웃음소리를 기억한다는 것


그것이 여행일 것이다

그것이 아마 사랑일 것이다

최현주의 <그 여자, 인도 여행> 중에서



그런데 어쩌면 나는 이 계획을 (뚜벅이의 길) 평생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 카메라를 든 뚜벅이를 <꿈꾸는 삶>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그날도 동해안의 많은 것을 향해, 마음을 조준선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 손가락은 가만히 셔터에 올려 두었다. 왼손은 거들뿐. 그리고 찰칵!

24714338575E37702D.jpg 떠아야 만날 수 있는 것들 (스팟 촬영 방식으로 찰칵)

<추신>

계획한 그날이 오면 나는 일단 경주를 벗어나 동해안을 따라 걸을 거다. 어깨에 맨 가방 속에는 노트북과 사진기 그리고 만년필과 노트... 그리고 책 몇 권.


몇 날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후포, 울진, 삼척, 강릉, 속초까지 걷고... 강원도를 가로질러 춘천 그리고 서울. 서해안을 따라내려오면서 변산, 보령, 군산, 목포, 여수, 통영, 거제, 부산, 울산... 나는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오래전 여름부터 일부 지역들은 틈나는 대로 차로 사전 답사해 왔다.


그 여정에서 덤으로 얻을 권정생, 정지용, 이효석, 박경리, 청마 유치환 등의 흔적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지금 내 몸은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 거리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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