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서면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된다
엉덩이가 아프다. 아픈 이유가 좀 거시기해서 말하기가 좀 거시기하다. ㅠㅠㅠ 자전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수영이나 헬스를 하지 못해, 몸이 근질거려 뭔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이 자기가 타던 사이클을 주고 이사를 갔다. 타던 것이라고 하지만 블랙의 날렵한 몸매 그리고 스크래치가 별로 없어 마음에 쏙 들었다. 기아도 전륜 3/후륜 7에 21단이다. 하지만 날씨가 차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주말 사이클, 아니 요즘 말로 로드 바이크라고 불리는 그놈을 몰고 집을 나섰다. 만만한 곳이 황성공원이다. 김유신 동상 밑으로 해서 씨름장 그리고 시민운동장 주위를 크게 몇 번 돌다가 보문으로 향했다.
콜로세움을 들머리 삼아 물너울교, 징검다리, 호반광장, 수상공연장, 사랑공원, 한 바퀴 도는 데 20리 길이 채 안 되는 6.5Km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호반 길을 걷고 있었다. 전에 도보로 그 길을 걷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딸랑거리며 다니는 사람들을 째려봤는데 어쩌다 보니 그날은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호반광장부터는 ‘끌자’했다. 그렇게 사랑공원에 도착해 벤치에서 잠시 쉬며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다 보니 지난여름 그리도 화려했던 핑크 뮬리가 다 잘려 나간 것이 눈에 띄었다. ‘핑크 뮬리 생태계 교란’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 데 그래서일까? 자리를 잡은 김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아 보았다.
원산지가 미국이며 연분홍색 억새의 일종인 핑크 뮬리는 얼마 전부터 많은 지자체들이 앞을 다투어 랜드마크 화하고 있다. 경주만 하더라도 수년 전에 보문 입구 스타벅스 (당시엔 없었음) 맞은편에 처음으로 얼굴을 살짝 비치더니만 -그땐 나처럼 그 꽃의 이름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첨성대 등에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진작가들이나 여행 온 관광객들의 포토 존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유혹적인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핑크 뮬리에도 간과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한다.
황소개구리나 베스가 우리 생태계를 교란시켜 문제가 되는 것처럼 핑크 뮬리는 가뭄에 강하고 번식력이 강해 인근 다른 식물들을 못 자라게 황폐화시킨다는 것이다. 매년 여름 말과 가을 초에 핑크 뮬리를 볼 때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냥 좋다고만 여겼는데 그 뒷이야기를 알고 보니 마뜩지 않았다. 텀블러 커피가 바닥나 버렸지만 조금 더 앉아 있기로 했다. 호수 건너편 서쪽 하늘의 석양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그렇다. 초면에 그렇게 좋아 보이던 사람이 자주 만나다 보니 영 형편없는 사람일 때가 종종 있다. 혹은 맨 정신일 때는 그리도 겸손한 사람이 술 한 잔 마시면 투견으로 변할 때... 나는 그 자리를 버텨내지 못한다. 이렇게 내가 그들에 대해 실망한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보고, 그런 유사한 생각을 할지 모른다. 스스로 논리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따지기 좋아하고 정치적 성향이 반 지역적이며 술 자석에서 취하면 도주하는 등등 많은 것에서 말이다. -물론 술 값 때문에 도망가는 건 아니다. 보통은 그때까지 마신 술값을 내고 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을 좋은 게 좋은 거라면 모나지 않게 살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에서 징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동전의 뒷면과 같은 이중인격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나의 삶을, 진정한 생활 태도를 모니터링한다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기가 막혀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라는 존재는 분명 모순 덩어리임을 자인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내가 날 잘 안다.
우리 대부분은 핑크 뮬리 같은 삶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핑크 뮬리처럼 가련한 자태에 숨겨진 비밀? 만일 그 꽃이 외관상의 장점을 유지한 채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향기를 내뿜고 나중엔 그 줄기나 뿌리가 약이 된다면? 그런 퍼펙트 한 것을 현실에 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상의 나래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남편으로 아빠로서 아들로, 나를 보는 시각을 다 다르다. 다른 집 남편이 아빠가 아들이, 이렇고 저렇고 하다는 데 하며, 내게 바라는 마음은 이해는 가지만 그건 비 현실적이다. 마치 핑크 뮬리가 향초도 되고 약초도 되길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그나마 한 가지라도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면, 특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다. 핑크 뮬리에서 연분홍색의 가련한 자태만 보면 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과욕 불급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귀가 길 사이클 안장 위 엉덩이가 가벼운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안 타던 사이클을 하루 종일 타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그날 라이딩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오래전부터 뚜벅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먼 여행을 틈틈이 계획해 보긴 했어도 사이클은 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그 친구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도 모아 볼 수 있었던 그날 저녁 나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기로 했고 사이클 헬멧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G마켓을 돌아다니다 잠들었다. 엉덩이의 미세한 통증을 느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일몰. 한참 넋 놓고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