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abula rasa

충족을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고흐와 윌러스

by 장영철 Francis

며칠 전 넷플릭스를 통해 우연히 영화 한 편을 처연(?)하게 봤다. <빈센트 반 고흐 - 영원의 문에서>다. 고흐의 광팬이 아니라면 지루하게 느껴질 영화지만,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인상주의’에 관련된 자료들을 뒤적이고 있었던 내게, 그는 아방가르드이기도 했기에 나름 흥미롭게 봤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살았던 고흐. 만일 그가 유럽 미술사에 있어서 오래전부터 혹은 당시 미술계에서 대세였던 신화, 신앙, 고전적 양식, 즉 타율적인 제작 방식으로 순응하는 그림을 그렸다면 -당시 재력가 혹은 후원자들의 기호에 맞게- 그의 삶이 그리도 힘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미술의 양식과 주제를 고민하고 자신만의 의지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고흐. 그는 동생 테오가 당시 프랑스에서 잘 나가던 미술 중매인이었지만, 자신의 그린 1,500점 그림 중에서 <붉은 포도밭> 한 점만이 겨우 팔릴 정도로 철저하게 비주류 화가였다, 아니 남들의 눈에는 그냥 서툰 그림쟁이였다.


그러나 고흐 같은 인상파 -구스타브 쿠르베, 마네, 고갱, 세잔 등. 인상파라는 유래는 당시 주류 미술가들이 그들을 경멸하게 부른 데서 유래했다- 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기존의 인습을 대담하게 비판, 거부하고 새로운 화풍을 고민한 결과, 서양 미술사의 새 장을 연 주역들이 된다. 하지만 다른 화가들과 달리 -지금은 온 세계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 생전에, 양지는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소싯적 나는 미술책에서 이상한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밀밭인지 보리밭인지 위에 낮은 하늘과 흉측한 까마귀 떼를 거친 붓으로 덧칠한 그림. 그리고 노란색, 파란색, 녹색만이 유독 강조되는... 어린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내 눈에 그냥 물감 덧칠 낙서로 보일 뿐이었다.


좋은 그림이란 피사체와 유사해야 되고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고 배운 내 어린 시선에서, 그 그림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그림은 내게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느낌(매력)을 주었다. 그 그림의 제목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라고 했다.


화가는 생전 처음 들어 본 고호란다. 지금은 고흐라고 하지만 그땐 고호라고 했다. 제목도 고흐가 그 그림을 그리고 나서 <까마귀 ~>라고 명하지 않았고 후에 미술 판매상들이 편리상 붙인 것이라고 한다. (후에 알았지만), 마치 ‘빠빠빠 빰’으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후세 음악인들이 <운명>이라고 이름 지은 것처럼.


최근 <모든 것을 빛난다>라는 책을 읽었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로 유명한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1인이 쓴 책이다. 4백여 쪽 분량의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 책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서양 철학의 개념들과 그리스 신화, 중세 역사, 단테의 신곡, 멜빌의 <모비 딕>, 여러 영화들... 등에 관한 지식이 베이스로 깔려야 한다.



그건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그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그래서 그에 대해 모르면 절대 그 책을 소화해 낼 수 없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라는 인물이었다. 그를 1도 모르고 있는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캐느라, 책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이라는 말이 날 두고 하는 말임을 실감했다-


월러스는 미국에서 당대 가장 위대한 작가였고 가장 위대한 정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이렇게 과거형을 쓴 이유는 1962년에 태어나 46세에 자살해 지금은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흐와 이제는 또 다른 나의 아방가르드가 된 월러스. 19세기와 21세기, 화가와 작가, 그리고 자살... 혼란스러운 그들의 차이점과 공통점들. 그러나 그 둘의 중요한 유사점은 혼돈과 상실의 뼈저린 감각, 방황하는 존재의 어둠이야말로 이 시대의 핵심 문제라는 지각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시간이 지난 후 월러스에 대한 글을 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느낌은 1이 아니라 0도 모르는 수준이라 자신이 없다.


그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단테의 <신곡>과 버무려져 있는 글 한 구절로 그나마 위안을 삼고자 한다.

223쪽

...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다 해도 그에게는 더 많이 피우고픈 갈망만이 남을 뿐이다... 충족을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더 큰 욕망뿐이다...

이 글의 일부를 포스트잇에 써서 컴퓨터 모니터 옆에 붙여 놓고 금주 7일째 새벽을 만나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부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에서 유래한다. 그 돌격대 정신으로 일단 금주 아닌 절주 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9a02cc93bdde9ec19a037507b8bcd0b6c747843f.png

임파스토 -유화 물감을 붓, 나이프, 손가락 등에 발라 그대로 자국을 남겨 다양한 질감과 표면 변화를 일으킬 때 활용하는 기법-로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쥐뿔과 개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