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는 읽었지만...
지인의 아내 몸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되었다. 당황한 그는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의사에게 상담을 요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 주치의로부터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기에 답답한 심정에서였다. 그러나 그 의사도 그에게 답답하긴 매 한 가지였다. 왜냐하면 그 의사는 정형외과 쪽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사라도 자기 전공 외, 것들을 잘 모르기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다. 변호사도 각기 자기 전문 분야가 있다. 자가 분야가 아니면 변호를 맡지 않는다.
인문학계에 박사학위를 소지한 교수들을 여럿 안다. 넓은 박(博) 자를 쓰는 박사니 그들의 지적 범위가 넓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넓기보다는 자기 분야에 ‘깊이 안다’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같은 서양사라도 서양철학사와 서양 윤리사를 전공한 각각의 박사들의 강의를 들어 보면 일부 겹치는 내용을 제하고 많은 시각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학문이 심오하기 때문이다.
구닥다리 이야기지만 어떤 의과 대학 인턴이 미팅 자리에서 상대가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자기는 의학 공부를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 로미오는 읽어 봤지만 줄리엣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고 하더란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릴 적 내가 아는 간호사 누나가 해 준 실화다. 그만큼 의학 공부가 빡시다 라는 뜻일 것이다.
다 같은 글을 쓴다고 해도 시인이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고교 시절 나름 이름 있는 소설가였던 담임 쌤의 고백 - 언어를 축약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어를 만드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고나야 한다, 라는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혹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후) 다시 열심히 공부해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종종 받는 사람들이 가끔 화제의 인물로 회자된다. 박수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대다수 나 같은 사람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그냥 <교양>이라는 차원에서 이 책 저책을 뒤적이고, 이런저런 강의에 기웃거리곤 한다. 깊게 팔 능력이 없으니 넓게 라도?
왜?라고 물으면 풍요로운 교양의 들판을 거닐고 싶은 마음과 믿을 만한 해도(海圖)를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중요한 지식을 요약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중요하지 않거나 교양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배척할 줄 아는 내공을 쌓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무엇일까? 교양은 남에게서 배워 쌓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치열하게 성취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알지 못해도, 않아도 되는 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교양에 속한다.
그 복잡한 그리스 신화를 줄줄이 외워 대화 때마다 들먹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말하는 나도 10 수년 전 어린 아들을 위해 10권짜리 그리스 신화 만화 전집을 사준 헛발질을 한 일이 있음을 고백한다. ㅠ) 평범한 내가 아무리 욕심이 나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대전>을 읽어내겠다고 덤비는 것은 일종의 허위의식이고 지적 허영이다.
그래도 동·서 역사와 철학 책을 몇 번씩 읽어내고 각종 문학서는 뷔페 즐기듯 탐닉하면서 서양미술사에 대해서는 나름 일가견을 가져 보려고 노력하는 스스로에게 가끔 도닥도닥거려준다. 이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는 내가 어제 오래전에 읽었던 독일의 한 인문학자가 쓴 교양에 관한 글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교양이 억압적 표준, 불쾌한 과제, 경쟁의 형식 또는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는 교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양은 이른바 <교양>으로 분리되어 나타나서는 안 되면 특별히 화제가 될 필요조차 없다.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이다. 요컨대 교양은 정신과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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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표준이 세계 문화를 지배, 획책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가 유럽의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럽 문화의 중심적인 두 가지 텍스트인 <‘성경’과 ‘일리아스’ & ‘오디세이아’>를 머릿속에 정리해 놓는 다면, 그들의 (특히 유럽) 문화를 접할 때 보다 수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을 쓴 하느님은 인간들이 보아서는 안 될 존재로 알려져 있고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탈출기 33장 20절}, ’ 일리아스‘ &’ 오디세이아’라는 양대 서사시를 쓴 호메로스는 장님이었다는 사실, ‘볼 수 없고, 보지 못하는 저자의 묘한 공통점’ 이런 것들을 우연이라고 하나? 등 깨알 같은 재미를 느껴 보는 것도 여름을 이기는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얼마 전 낡은 오디오를 대신할 앤티크 한 오디오를 하나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