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abula rasa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게, 죄다

맞다!

by 장영철 Francis

어린 시절 나는 북한 인민군들은 머리에 뿔이 나 있고 피부가 붉은 사람들이라고 배웠다. 대단한 반공교육 때문 일거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지만, '미라이 학살'은 친미국가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들의 가해자가 독일이었다면,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가해자는 미국이었다. 베트남 전쟁 중인 1968년 3월 16일 미군 26명에 의해 미라이에서 벌어진 민간인 대량 학살로 5백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차마 말이나 글로 옮기기가 참... 잔혹하다. 나치나 그 미군들은 그 최악의 잔혹행위를 저질렀을 때, 도대체 개인의 양심은 어디로 간 걸까.




상황 1)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의 한 법정에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재판이 열렸다. 그 방청석에는 유대인이며 독일 생인 그러나 미국 국적의 여류 철학자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가 <더 뉴욕>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취재차 참관했다. 피고석에는 독일 나치의 친위대 장교였던 50대 중반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앉아 있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태인을 체포하고 강제 이주시키는 계획을 실행한 인물이다. 독일의 항복 후 아이히만은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가명으로 숨어 살았다. 그러나 15년 동안 그의 뒤를 쫓던 이스라엘 정보 조직인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끌려 온 것이다.


검사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의 죽음을 방관하고 가스실이 달린 열차를 개발한 아이히만에게 물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가?” 아이히만이 답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관리자였을 뿐이다.” 검사가 또 물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은 없었나?” 아이히만 이어 답했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업무를 잘 처리했기에...”


그 광경을 Tv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의 뻔뻔한 대답도 그렇지만 그의 용모를 보고 더욱 놀랐다고 한다. 뿔도 없었고 피부색은 붉지 않은, 그냥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그때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은 인간이란 존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실험으로 증명했고 그 결과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황 2)

밀그램은 모집된 실험 대상자들에게 ‘학습과 징벌에 관한 실험을 한다.’고 속이고 실험실 한 방에 A(관리자)와 모집된 실험 대상자 B(교사)가 함께 있도록 하고, 그 옆방에는 A와 공모한 C(학생)가 있도록 설정했다.


다음 사진은 밀그램 실험실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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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는 관리자, T는 모집된 실험 대상자 B고, L은 관리자와 공모한 C다> -인터넷 캡처-


그리고 ‘A의 지시’로 <B>가, C에게 문제를 내게 하고 틀린 답을 할 경우, C의 팔목에 연결된 전기 충격기의 승압을 높여 나가도록 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틀린 답을 하자 승압은 점점 높아져 갔고, 옆방 C는 충격기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물론 C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는 A와 공모한 가짜다)


사람들은 C가 고통스러워하는 그 상황에서 B가 그 실험 도중에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의 재촉을 받은 적지 않은 수의 B는, C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는 마지막 단계까지 멈추지 않았고 그 수가 무려 65%나 되었다.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B와 같은 사람들이, A의 권위에 눌려 어떻게 C에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호주, 독일, 요르단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실시되었는데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왔고 여성과 남성도 모두 비슷한 복종 비율을 보였다고 한다.




마무리>

측은지심을 말한 맹자는 인간의 성선설을 이야기했는데... 독일 나치나 베트남에서의 26명의 미군이나 실험실의 B나, 인간의 본성을 드려다 보면 ‘도진개진’, 너무 비약적인 결론일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보고 나서 그에 대한 책을 출간했는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가 바로 그 책이다. 아렌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악마 같은 인간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원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악행을 저지른다.”


특별한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어떤 상황에 놓이면 저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히만이 아니다.”라는 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이히만처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조직)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불의’를 저지르거나 못 본척한 적은 없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히만을 동정해야 할까? 아니다. 아렌트는 그의 죄를 이렇게 단정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사유 불능성’에 있다.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죄’, 생각의 무능이 죄다.” 맞다. 생각 없이 산다면 그건 개도 아니다. 한 마디로 목석(木石)이다. 그렇게는 살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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