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의 글을 읽고...
[나는 불나방이다/ 우연히도 내가 계속 살아있다/ 심각하면 지는 거다/.../ 추우면 옷을 입어라/ 죽음은 삶의 연속이다/ 앎은 삶이다/ 천천히 하지 말고 빨리해라/ 체력은 한계가 있다 정신으로 지배하라/ 멀리 보라. 그러나 너무 멀리 보지는 마라/.../ 비를 맞이하라/.../ 낙관하라/.../ 편안하지 말고 불편해라/ 밤길은 위험하지 않다. 내가 가장 위험하다/ 자존심이 밥을 먹여준다/ 늦잠 자지 마라/ 힐링 따위 개나 줘라/ 앉지 마라. 눕지 마라. 먹지 마라/ 싸웠으면 이겨라. 맞지 말고 때려라/ 지는 것은 지는 것이다]
며칠 전 잠시 본 인터넷에서 본 어느 연예인의 메모 글이다. 오래전에 쓴 글 같았다. 그 글을 읽고 순간 내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 잠시 멍했다. 그날 이 글들이 내 갈비뼈를 콕콕 찔러댔다.
불을 지펴졌고 난 뛰어들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 이미 나는 불나방이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세월에 물들어 가면서 신음처럼 읊조려 본다. 모든 게 운명이다.
맞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우연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서는 게 이젠 낯설지 않다. 되짚어 보니 벌써 서너 차례, 아니 대여섯 차례다. 그래, 내 삶은 우연이다, 그것도 아주아주 독한 운명과 조우한.
지지 않기 위해 심각을 위장할 줄 아는 건 내 장기(長技)다. 추우면 덧옷을 껴입듯이, 힘들 때마다 심각을 꼭꼭 숨겼다. 그리고 신 새벽에 홀로 깨, 아무도 모르게 풀어 보고는 추워서 떨곤 한다. 참 궁색하지만 지금도 그것은 진행형이다.
멀기만 느껴지는 죽음이 바로 저 언덕 너머에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허무한 생각이 들 때마다 구차하게 여겨지는 내 삶의 연속을 중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삶이 앎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읽고 사색하고 쓰고, 읽고 후회하며 쓰고, 눈물짓는다. 그렇게 함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배우고 발견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즉 실천’이다. 서둘러서 낭패 볼 확률은, 미루다가 하지 못해 당하는 황당함의 확률보다 훨씬 낮다.
체력과 정신은 반비례한다. 이건 경험에서 얻은 팩트다.
높이 날라야 멀리 본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결국 말 뿐이다. 높이 날 수 없기에 멀리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래서 멀리 볼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나는 월요일 출근길에 금요일 퇴근을 꿈꾼다. 딱 그때까지만 보며 살려고 바둥바둥 되며 버티고 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 초라해진다. 그런 경험이 있다. 그래도 낙관하지 않았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안다.
편안하면 살찐다.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도 그렇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미각(味覺)만을 위해 맛난 것을 먹고, 일부러 토해 내고 또 다른 맛난 것을 탐하고 나서 또 토해 내고... 하는 것처럼 살찐 영혼은 불편한 것을 참어 내지 못하고 편안함만 삼키려 한다. 불편한 사색이 낄 자리가 없다.
위험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다. 그건 잠들지도 않는다. 늘 으르렁거리며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어둔 길이 두려운 건이 아니라 어둔 내 영혼이 위험하다.
전통과 위엄 뒤에 숨은 비록 쥐꼬리만 한 자존감이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아 낼 수 있을까? 어제 어떤 스크래치 때문에 몇 년 간 몸담았던 모임에서 탈퇴했다. 처음에서 망설였지만 마무리하고 나니 후련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존감을 내세웠다가 몇 해째 가슴을 앓고 있는 나는, 자존감이 밥을 먹여 준다는 말을 깊게 공감한다.
늦잠은 없다. 내 오래된 습관이다. 새벽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읽거나 걷거나 사색하거나 쓰거나... 내게 있어 이 모든 건, 이 시각부터 시작된다.
집을 나와 어느 길로 가든 상처투성이다. 길마다 묻어 있는 상흔을 억지로 지우고 무덤덤하는 척하는 게 내게 있어 억지스러운 힐링이다. 개에게 줄 힐링은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 힐링은 낮술에 있다.
젊은 시절 잠시 절간을 들락 이던 때가 있었다. 안주하고픈 마음과 다퉈볼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즘 고승(高僧)들이 토굴에 들어가 면벽한다는 글을 읽고 나서, 나 스스로를 가뒀던 기억이 있다. 안 앉을 수는 없고 안 누울 수도 없지만, 안 먹을 수는 있다. 아니 적게 먹을 수는 있다. 근래에 살이 많이 말라, 보는 사람들 마다 묻는다. 왜?라고 물으면 나는 그저 쓴웃음만 답하고 만다.
싸웠으면 이겨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처음부터 비겁해야 한다. 그때 부끄러워서 비겁을 택하지 않았다면 이제 남은 건 이를 악물고 싸우는 수 밖에 없다. 지고 이김은 내 영역이 아닐 수 있지만 최선은 내 몫이다. 그러고도 졌다면 흉볼 일이 아니다. 지면 그렇게 그냥 사는 거다. 그동안 내가 살아 내면서 몇 번이나 이겨봤나 돌이켜 보니 별로 없다. 내 삶은 늘 지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은 욕심을 부려 본다. 그 욕심이 얼마나 채워질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코로나 때문에 몇 달간 휴강했던 캘리그래피 수업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잡은 붓은 서늘한 칼이 되어 화선지를 갈랐고 창 밖에는 이른 여름 더위를 알리려는 듯, 소나기가 고함을 내 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붓을 들고 늘 내 삶이 '파란 하늘'이기를 소망해 본다. 맞다. 난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