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자칭 타칭 ‘철학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40대 사람을 만났다. Y대 경영학 학사인 그는 뜻한 바 있어 S대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서 그가 원하던 제도권에서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것 등-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유는 비록 유수한 S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더라도 그는 S대의 진정한 성골이 아니기 -S대 학부 출신이 아니기- 에 철학계의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는 재야의 철학자가 되기로 맘먹었다. 그것도 일반 사람들에게 자기의 전공인 철학만을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서양미술’을 엮어서 말해 주고 싶었다. 오래전에 그에게 서양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작/ 창비 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가 내게 그 책을 읽어 보기를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미술에 흥미를 가지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등 대 여섯 권의 미술 관련 책을 읽었고(대부분 ‘미술 감상의 길잡이’ 같은 책?) 나름 그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터라, 나는 일체의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초판이 나온 지 30여 년이 넘었고 개정판도 20여 년이나 지난 이 책은 절판이 된 상태라, 중고 서점 가를 뒤지고서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보통 미술에 관한 책이라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대작들을 보편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관한 에피소드 등을 버무려 쓰건만, <나의 서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문법적이었다. ‘서양미술을 이렇게도 읽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게다가 왜 그의 1장의 글과 그림(캄비세스 왕의 재판)을 보고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내게 맨 먼저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슈낙은 한 편의 시적 세밀화(細密畵)와도 같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섬세한 언어로 묘사했다. 슈낙에게 있어서 슬픔의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은 다양했다. 가을,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우리 안에 갇힌 동물원의 표범, 그리고 횔덜린과 아이헨도르프와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가곡, 달리는 기차. 또한 슈낙의 눈에는 슬픔과 우울의 정념은 대상을 응시하는 정적인 순간이나 과거에 대한 회상과 추억의 순간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찰나의 순간에도 불현듯 깃든다.
하지만 당시 30대 후반의 서경식은 서양(유럽)의 미술 컬렉션, 미술관, 박물관 등을 찾아 그림과 조각 등에 한정해 그의 슬픔을 써내러 갔다. 서경식의 슬픔... 그가 그 책을 쓸 무렵 군사독재 시절 조국으로 유학 간 형이 둘씩이나 재일 조선인 유학생 간첩으로 조작되어 십 수년의 투옥생활을 하고 있었고, 기약 없는 옥바라지로 지쳐 돌아가신 부모님. 그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은 누이. 디아스포라(Diaspora)였던 서경식 가족사는 이렇게 비극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유럽을 돌아다니며 보고 쓴 작품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일그러지고 고통스럽고 괴기스럽기만 했다.
왼쪽 발목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의 그림 <캄비세스 왕의 재판>에서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 올리고 <수태고지> 그림을 보고 나서 같이 갔던 누이(아직 홀몸이지만 이미 젊다고는 말할 수 없는)가 ‘애를 갖고 싶어...’라는 중얼거림에 묵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던 그. 또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들>을 보면서 채 한 평도 되지 않는 곳에 갇혀 있는 형들을 떠 올리고, 피카소의 <게르니카>을 보며 조국 광주의 ‘5월 항쟁’에 도리질을 하고 만다. 구석구석 마흔 고개 앞에 절망하는 순례자 서경식.
누군가 서경식에게 왜 어두운 작품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그가 이렇게 말한 걸까.
(118쪽)
피지배자의 후예가 절대적 소수자로서 지난날의 지배자들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생활'의 밑바닥이 불안을 품기에 충분하다. 하물며 고국은 두 쪽으로 찢어져 있는 채요, 형들 중의 두 사람은 이미 10년 이상 그 고국의 감옥에 있다. 양친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내 상념 속의 누이는 물론 이미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어두컴컴한 속에서 혼자 서성거리고 있다.
그의 책 읽기를 마치면서 다음 글을 다시 읽어 본다. 얼마 전 대선을 복기하면서.
(108쪽)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 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 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이 글을 쓰면서 그의 또 다른 책 <나의 서양음악 순례>를 주문했다. 어쩌면 나는 숨 막히는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실존적인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뒤늦게나마 그의 방문 앞에서 서성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봄 목련은 지고 벚꽃은 보문을 뒤덮어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 다른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