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구경

사진과 먹거리

by 장영철 Francis

출사는 짧게 반나절 이상 시간이 소요된다. 먼 지역으로 가게 되면 1박을 해야 하지만, 요즘 같이 험한 때는 가급적 밖에서 자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출사지에서의 먹거리는 -그게 간식이든 한 끼든- 필수다.


간식으로, 단연 어묵이 최고다. 출사지 가는 길에 어묵을 만나면 일단 먹고 본다. 자주 가는 영덕 해맞이 전망대 인근 노점 어묵 집은, 내가 자주 찾는 오래된 단골집이다. 그런데 집이나 회사에서 반찬이나 국으로 나오는 어묵에는 손이 안 간다. 나도 모를 미스터리다.


끼니는 가급적 그 지역 향토음식으로 때운다. 동해 바닷가 인근에서 물회나 곰치국, 강원도에서 막국수나 콧등 치기 국수, 충청도 서해안에서 게국지, 전라도에서는 (육회) 비빔밥이나 추어탕... 등등 이도 저도 애매하면 칼국수다. 전국 어디엘 가든 반드시 있는 식당 중에 하나가, 칼국수 집이기도 하지만 내가 ‘칼마’ (칼국수 마니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날 먹거리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다. 복불복이다.


지난달에는 구룡포 항에서 우연히 막 잡아 온, 홍 게 경매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기회가 있었다. 바닥에 깔린 살아 있는 수 백 마리의 홍 게는 장관이었다. 수년 전 영덕에서 보고 몇 해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경매가 끝나고 중매인들이 일반인에게 홍 게를 팔기에 나도 엉겁결에 열몇 마리를 샀다. 가격도 저렴했다.


근처에서 홍 게를 오천 원 주고 삶아 집에서 먹어 보니 먹을 만했다. 그다음 주에도 홍 게 열 대 여섯 마리를 사다 날랐고 덤으로 소라도 두 소쿠리나 사서 지인과 나누기도 했다. 그다음 주에는 불 독같이 크고 어마 무시한 러시아 산 ‘킹 크랩’을 사다가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안겼다.


게 값은 시세라 마지막 주에는 가격이 최고로 올아, 게 값이 금값이었다. 문득 그 몇 주 동안 먹어 치운 게가 평생 먹은 게보다 훨씬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게를 사러 다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주객이 전도되고 만 것이다.


그러긴 했어도 게에 관해 이것저것 알게 된 건은 작은 소득이었다. 구룡포에서 만날 수 있는 게는 크게 ‘홍 게와 박달대게 그리고 킹 크랩’이다. 업자의 말을 빌리면 경매를 마친 게는 살게(살이 가득한 게)와 물게(물이 가득한 게)로 구분되어 살게는 인근 가게 수족관으로 옮겨지고 물게는 가판에서 싸게 처리된다고 한다. 게에 살이나 물이 많은 건, 출사지 먹거리처럼 복불복이 아니라 이렇게 애당초 구분되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제대로 게살을 먹을 거라면 노점보다는... 그러나 게 값이 문제였다. 게 값도 가게마다 다 달랐다. 킹 크랩 가격을 물어본 두 가게의 가격차가 3만 원 이상 차이가 났다.


그 보다 가격이 조금 싼 게 -그렇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박달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살이 꽉 차고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리는 게다. 지역마다 다른 특유의 표식을 무슨 완장처럼 차고 있었다. 품질을 보장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하는 데 먹어 보지 않아 그건 모르겠다.


흔한 건 홍 게다. 구룡포 항에 가면 때에 따라 다르지만 예 일곱 정도의 노점에서 홍 게를 저렴하게 판다. 고급지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격 대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질보다 양? 소맥 안주로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세상을 찍는 거다. 향토 음식을 접하는 것은 세상을 맛보는 거다. 이렇게 찍고 맛보고 사는 건 <세상 구경>을 하는 거다. 이런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나름 행복한 일이다. 큰돈 써가며 외국에 가서 산해진미를 먹는 건 보다는, 물론 아직은 자유롭지 않지만.


출사 갈 때마다 멋진 장면을 찍을 수 있고 최고의 맛난 걸 먹고 편안히 다녀올 수 있는 '편한 사진의 길'은 애당초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일들을 출사 간다고 하지 않고 세상 구경을 간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적전으로 공감한다. 덧붙여 그 세상 구경을 하는 데 나는 좋은 관람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사진은 내 취미다. 먹거리는 보너스고, 허탕은 -사진이나 먹거리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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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다 만난 < 숲 속의 해 > - 다중촬영 기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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